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김치와 코로나

등록 2020.07.17 21:48

수정 2020.07.17 22:01

베트남전에 나간 우리 군에게 미군 전투식량은 악몽이었습니다. 푹푹 찌는 정글에서 밍밍하고 느끼한 C-레이션만 먹다 진이 빠졌지요. 보다 못한 박정희 대통령이 존슨 대통령에게 '김치 친서'를 보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하루 세끼 함께하는 김치만이라도 우리 장병이 먹을 수 있다면 사기가 크게 올라갈 겁니다…"

그렇게 탄생한 국산 김치통조림 덕분에 우리 젊은이들은 기운을 차렸습니다. 김치가 맵고 짠 염장에 몸을 내맡기는 건 헌신입니다. 잘 익도록 겨울을 참고 기다리는 건 인내입니다. 우리 모든 입맛을 끌어안는 건 사랑입니다. 시인들은 김치를 '높으나 높은 정신' '우리 가슴 먹여 살리는 순한 목숨'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 어느 의원이 김치를 모독했습니다. "한국군에게 썩은 채소를 먹이느라 국고를 낭비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김치에 열광하는 세계인이 들으면 기겁할 말입니다.

그 김치가 또 새롭게 각광받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코로나 사망률이 낮은 것은, 김치가 바이러스를 차단한 덕분이라는 프랑스 연구진 논문이 나왔습니다. 연구를 이끈 호흡기분야 석학은 "나도 절인 양배추 위주로 식단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김치는 사스 때도 주목받았지만 어디 김치 덕분만이겠습니까.

엊그제 대구 동산병원이 만해대상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야전병원'이자 '자원봉사자의 성지'로 불렸던 바로 그 병원입니다. 서영성 병원장은 "모든 직원이 대구의 노아의 방주가 돼야 한다는 결의로 싸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병원에 주는 상" 이라고 했지요. 내일 모레면 국내에 첫 코로나 환자가 나온 뒤 의료진, 방역당국, 그리고 온 국민이 힘겨운 사투를 벌인 지 6개월이 됩니다. 그 사랑과 헌신, 인내는 김치가 품은 정신과 다름없습니다.

강화도 오두막에 혼자 살던 시인에게 어머니가 김치를 담가 보내셨습니다.

"당신 마음이 그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일단,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은경 본부장의 소박하되 절실한 소원처럼 모두가 한마음 되면,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도 결국 끝나고 말 겁니다.

7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김치와 코로나'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