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등록 2020.08.17 21:48

수정 2020.08.17 22:01

창덕궁 후원, 아름다운 주합루 왼쪽에 숨듯 들어앉은 이 집. '책의 향기'라는, 운치 있는 이름의 서향각입니다.

주합루 일층 규장각에서 책을 옮겨와 바람 쏘이고 볕에 말리는 포쇄를 하던 곳이지요. 책에서 번져나는 쿰쿰하되 정겹고 아련한 냄새가 떠오릅니다.

포쇄 또는 쇄서포의란, 장마 끝나는 음력 칠월 칠석 즈음에, 눅눅해진 책과 옷, 곡식을 내다 말리는 풍습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신당에 모신 옷을 꺼내 말리는 마불림제를 지내지요.

하지만 말릴 게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시인은 축축한 사람들 마음부터 말려 쓰라고 합니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아무리 긴 물난리 구년지수에도 볕 든 날 있다는 옛말처럼, 길고 모진 장마 끝나고 햇살 내리쬐는 날이 왔습니다.

하지 무렵 시작해 입추 지나고 처서 앞두도록 54일이나 '우울(雨鬱)'했던 하늘이 마침내 걷혔습니다.

코로나에 큰물까지 덮쳐 처질대로 처진 우리네 몸과 마음부터 보송보송 말려야겠습니다. 

그제 광복절도 민족이 마침내 빛을 되찾았던 날입니다. 편가르기와 삿대질로 나라가 둘로 찢긴 시대에, 화해와 통합의 언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날이지요.

그런데 광복회장이라는 분이 친일 딱지를 여기저기 붙여대는, 축사 아닌 축사를 했습니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승만 대통령과, 기념식장에서 대통령도 합창한 애국가의 작곡가를, 일부 쟁점만 내세워 '민족반역자'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발언에 동조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잇따르고 있고 "통합당은 친일파의 대변자냐"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광복절 축사로 나라가 또 두 동강이 나게 생겼는데 여기에 기름을 끼얹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지율이 떨어지니 토착 왜구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고 꼬집은 것 역시 이런 상식적 의구심 때문일 겁니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이해하기 힘든 정치행로도 다시 부각됐습니다. 2년 전 한 세미나에서는 "친일파 후손 박근혜보다 항일 독립운동가 후손 김정은이 낫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천지를 울리던 우레소리들도 이젠… 먼 산맥의 등성이를 넘어가나보다…"

여름내 축축하게 지고 온 탐욕과 증오, 어리석음 내려놓고, 증오의 삿대질 거두고, 몸가짐 삼가야 할 사람들이 유난히 횡행하는 장마 뒤끝입니다.

8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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