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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정의연 사태' 3개월…신임 국세청장, 공익법인 '깜깜이 공시' 관행 깰까

등록 2020.08.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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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입김이 나오는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그리고 빨간 냄비에 수줍게 지폐를 밀어 넣는 꼬마 아이. 기부 문화의 상징인 A 재단법인 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다.

#2
B 재단은 1990년대 말 120여개 비영리 여성 단체들이 모여 설립된 시민사회공익재단이다. 재단 누리집에 따르면 현재까지 500억원이 넘는 기금을 모아 약 5400개 단체 1600개 이상 사업을 지원했다.

A·B 재단에겐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단체라는 점과 국세청에 올린 공익법인 결산공시가 의문투성이라는 점이다.

A 재단법인의 2019년 결산공시를 보면, 재단 설립 당시 출연자가 누구인지 기재돼있지 않다. 또한 해당 사업연도에 2000만원 이상 출연(기부) 한 사람이 있을 경우 명시해야 함에도 해당 칸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다.

'공익목적 사업의 비용 세부 현황'을 보면 '모금 비용' 항목이 '0'으로 적혀 있다. 모금 활동에 인건비나 물품 구입 비용 등이 들어갈 텐데도 쓴 돈이 없다는 점에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외부감사도 받지 않은 것으로 표시했다.

B 재단의 2019년 결산공시에는 출연 내역과 기부금품 지출 내역이 빠져 있다. 이는 A·B 재단법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5월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회계 논란으로 공익법인들의 불성실 공시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난지 만 3개월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 관련 활동을 하는 정의연은 기부금과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는 공익법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계 내역을 불성실하게 공시해 당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예컨대 3300여만원을 50곳에 지출하면서 특정 업체명을 대표 기재 해놓거나, 사업 수혜자를 '99명' '999명' 등으로 쓰는 식이다. 당시 정의연은 '관행'이었다고 해명했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정의연에 대해 재공시 명령을 할 방침인 것으로 당시 알려졌다. 그러나 27일 국세청 홈택스 누리집의 공익법인 결산공시를 보면, 정의연은 지난 5월 4일 이후 공시를 보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의연 관계자에게 '국세청으로부터 재공시 명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같은 내용을 국세청에도 물었지만 "개별 단체에 대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며 답을 피했다.

물론 문제가 불거진 특정 공시를 부랴부랴 보완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공익법인 스스로 안이한 관행을 타파하는 한편, 국세청 또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해야 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법)에 따라 국세청은 불완전 공시에 대해 재공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해당 공익법인 자산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을 가산세로 부과할 수 있다(상증법 제78조 11항).

해당 조항이 신설된 2007년 12월 31일 이후 가산세를 실제 부과한 경우가 있는지 국세청에 정보공개청구 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부존재 통계'임을 들어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상증법상 가산세 항목이 많은데, 그 총액에 대한 수치만 있을 뿐 항목별로 분류해 관리하지 않아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국세청 관계자는 "누락한 부분에 대해 안내를 하면 수정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그러나 불성실공시 사례가 수년에 걸쳐 확인되는 것을 볼 때 국세청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익법인에게 가산세를 물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국세청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공익법인들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우리 법은 공익법인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혜택을 두는 한편, 공익법인이 탈세나 상속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도 있다. 관련 법이 상증법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산공시는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국세청은 매년 7월부터 11월까지 통상적인 업무에 따라 공익법인 결산공시를 들여다본다고 했다. 이제 8월도 거의 다 지나갔으니 석 달 정도가 남은 셈이다. 신임 김대지 국세청장이 공익법인들의 '관행'을 깨주길 기대한다. / 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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