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안쓰럽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등록 2020.08.26 21:53

해바라기의 계절입니다. 어깨 처진 요즘 젊은이들이 정신 번쩍 들, 해바라기 명시 한 편 들어보시지요.

"나의 무덤 앞에는 빗돌을 세우지말라…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인의 삶은 암울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다 퇴학당한 뒤 만주를 떠돌았고, 마음의 병을 앓아 일찍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몸은 죽을지라도 내 젊은 영혼과 기상만은 죽지 않는다'고 외쳤지요. 이 책을 쓴 사람은, 일하는 10년차 엄마입니다. 집에 집착하지 않고, 집 없이도 멋지게 살겠다고 맘 먹었지만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고민과 환멸이 이렇게나 깊어졌습니다.

"내가 올리지 않은 미친 집값을 원망만 하며 살아야 할까. 한국에서 집을 사는 것은 미쳐야 할 수 있는 일, 제 정신으로는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요즘 아파트 매물을 30대가 '영끌'로 사는 게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영끌'이란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 그러니까 온 힘을 마지막 한 톨까지 쥐어 짜낸다는 신조어입니다. 집값은 미친 듯 뛰고, 대출한도는 확 줄었고, 청약 가점은 턱도 없는 30대는, 달리 어쩌란 말인가요. 영혼이라도 팔아 집을 마련하고 싶은 그 절박함을 주무장관이란 사람이 그저 "안타깝다"는 말 한마디로 깔아 뭉겠습니다. 30대의 '영끌'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책임 회피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도 "국민 다수가 부동산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더니 결국, 얼굴까지 붉히며 전 정권 탓을 했습니다.

"아니 아파트 가격이 올랐으면 우리 정권에서 올랐습니까. MB정권 때 안 올랐고, 박근혜 정권 때 안 올랐습니까."

이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절망하는 이삼십대들이 '이번 생에 집 사기는 글렀다'고 자조하며 빚을 내 증시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 안간힘이 희망 잃은 세대의 또 하나 '영끌' 같아 안쓰럽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 바벨탑의 꼭대기에서 떨어져 내리지는 않을지 위태롭기만 합니다.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답답하고 절망적인 젊은 날의 초상에 터뜨리는 일제강점기 시인의 절규가, 더욱 절절하게 와 닿는 지금 이 시대입니다.

8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안쓰럽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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