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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한동훈-정진웅 몸싸움' 감찰하던 서울고검 감찰부장 사표

등록 2020.08.31 13:47

수정 2020.08.31 13:54

[전문] '한동훈-정진웅 몸싸움' 감찰하던 서울고검 감찰부장 사표

지난달 29일 치료받고 있는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출처=서울중앙지검

정진기 서울고검 감찰부장(52·사법연수원 27기)이 사의를 표명했다.

정 감찰부장은 '채널A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47·27기)과 몸싸움을 벌여 논란이 된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52·29기)을 감찰해왔다.

정 부장은 최근 법무부의 중간 간부 인사 발표 이후 사의를 표명하며 31일 오전 8시 50분쯤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일신상의 사유로 검사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현 검찰 상황에 대한 일침도 가했다. "요즘 검찰은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모든 현상의 실상을 정확히 봐야 바른 견해가 나온다'는 옛 경전 구절을 들어 우회적으로 검찰을 비판했다.

"어떠한 사안이라도 치밀한 증거 수집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한 후 올바른 법리를 적용해 사안에 맞는 결론을 내려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것이고, 피해를 입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공자는 '오로지 남을 나와 같이 여기는 마음'을 강조했다"며,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이 여기면서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검찰 가족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직분에 충실하면서 올바른 실체 판단에 따라 법을 적용하고,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이 여기는 마음으로 사건 관계인은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해나간다면 언젠가는 신뢰받는 검찰상이 구현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갈무리했다.

정진기 감찰부장은 지난 27일 중간 간부 인사에서 대구고검 검사로 전보조치됐다. '한동훈-정진웅 몸싸움' 사건을 맡은 서울고검 감찰부 감찰팀 6명은 정진기 부장을 포함해 전부 보직이 옮겨졌다.

반면 한 검사장에 대한 독직폭행 혐의로 서울고검의 감찰을 받고, 피의자로 전환된 것으로 알려진 정진웅 부장검사는 서울고검의 감찰 요청 등에 응하지 않고, 이번 인사에서 광주지검 차장으로 승진해 논란이 됐다.

전남 담양 출신의 정진기 서울고검 감찰부장은 1998년 서울지검 북부지청(현 서울북부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울산지검 특수부장,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장, 의정부지검 차장검사 등을 거쳐 지난 2월부터 서울고검 감찰부장으로 근무했다가 6개월 만에 대구고검으로 전보조치됐다. / 한송원 기자


 

[전문] '한동훈-정진웅 몸싸움' 감찰하던 서울고검 감찰부장 사표
정진기 서울고검 감찰부장

[다음은 정진기 부장의 사직인사 전문]

이제 제 일신상의 사유로 검사의 직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평소 글쓰는 것을 즐기지 않아 조용히 떠나려 하였으나 떠나는 마당에 인사는 드려야 도의에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 몇 자 적어 올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아 제가 법조인의 길을 걸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1995년도에 운좋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수료 후 검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처음 검사로 임관된 이후 능력의 부족함을 피부로 느끼면서 몇 년을 더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훌륭하신 선후배 검사님들과, 수사관님, 실무관님 등 검찰 가족들의 도움으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느낀 점이 있습니다. 혼자 그 혹독한 훈련을 받으라고 하면 아마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인데 함께 훈련을 받다보니 서로 의지가 되면서 어떠한 어려운 환경도 극복이 가능하다는 교훈이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그때를 되새기며 난관을 극복하리라는 다짐도 하였습니다. 역시 검사로서의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사로서 자질과 역량이 많이 부족하였음에도 주위에는 그러한 부족함을 메워주는 선후배 검사님들과 수사관님, 실무관님들이 계셨기에 약 22년 5개월의 세월을 감당할 수 있었고, 또 이러한 점이 우리 검찰조직의 힘이라고 생각되고, 작금의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리라고 봅니다.

그 동안 평탄한 길도 걸었고 험난한 고개를 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이 느껴집니다. 거친 대양의 수 많은 파도를 넘어 이제 항구에 이르렀다면 앞으로는 수 많은 고갯길을 넘어야하는 인생의 행로가 남아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어차피 그마저도 세월이 지나면 한낱 뜬 구름과 같겠으나 하루 하루 초심을 유지하면서 생활한다면 또 다른 의미있는 일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즘 우리 검찰은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홀로 벗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검사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부끄럽지 않은 검사가 되고자 하였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지금까지 국민들께서 부여한 책무를 묵묵히 수행해 왔고, 앞으로도 어려운 난관을 잘 헤치고 그 책무를 다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옛 경전에 ‘모든 현상의 실상을 정확히 보아야 바른 견해가 나온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올바른 판단이 이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부작용과 더불어 국민들에게 피해를 안겨줍니다. 우리 검찰이 어떠한 사안이라도 치밀한 증거수집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한 후 올바른 법리를 적용하여 사안에 맞는 결론을 내려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것이고, 피해를 입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공자님께서는 ‘恕’(서, 오로지 남을 나와 같이 여기는 마음)를 강조하시면서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시제기이불원 역물시어인, 내가 원치 않는 일을 당하기 싫거든 다른 사람에게 원치 않은 일을 가하지 말라)이라 하셨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이 여기면서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검찰 가족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직분에 충실하면서 올바른 실체판단에 따라 법을 적용하고,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이 여기는 마음으로 사건관계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신뢰받는 검찰상이 구현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검사생활을 하면서, 여러모로 인품과 역량이 부족하였기에 시행착오도 많았고 저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제가 둔감한 탓에 부지불식간에 실수도 많았을 것입니다. 넓으신 마음으로 혜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늘 따뜻한 버팀목이 되어 준 우리 가족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더불어 그 동안 저와 함께 근무하였던 선후배 검사님들, 수사관님, 실무관님 등 검찰 가족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나누지 못함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이 글로써 대신 그 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올립니다. 새로운 길에서도 항상 우리 검찰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모두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8월 마지막 날에

정 진 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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