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모습 / 조선일보DB
■ 우등생에서 낙제생으로
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5.8%에 불과했고, 3대 신용평가사의 평가등급은 모두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위기가 닥칩니다.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돈을 풀었지만 실패했고, 5년 뒤 채무비율은 86.3%까지 치솟했습니다.
어딘지 요즘 대한민국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 나라. 바로 스페인입니다. 13년 전 스페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게는 어떤 교훈을 남겼을까요.
2008년 리먼 사태 당시 리먼브러더스 한국지사 / 조선일보DB
■ 리먼브러더스와 코로나19
앞서 언급한 스페인의 경제위기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였죠. 관광 산업과 부동산 호황으로 잘 나가던 스페인이 한번에 무너졌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자 은행이 연이어 파산했고, 실업률이 치솟았습니다. 세수도 줄어들었지만 스페인 정부는 실업수당을 퍼부었고 당연히 재정적자도 불어났습니다. 급기야 2014년엔 국가채무비율이 100.7%를 기록합니다.
스페인을 대한민국으로, 리먼 사태를 코로나19로 바꾸면 어떨까요. 세부적인 모습은 다르겠지만, 경제위기에 재정으로 대응하다 생각만큼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재정적자만 급증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해 보입니다. 요즘 스페인의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정부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전망 / 기획재정부 제공
■ 우울한 재정전망
정부는 5년마다 중장기 재정운용 전략과 재원배분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여기에 2060년까지의 재정전망도 포함됩니다.
정부의 전망은 우울합니다. 앞으로 40년 동안의 '장기재정전망'을 보면 시나리오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4.5%~81.1% 수준으로 전망됩니다. 최악의 숫자는 2045년에 나왔는데, 채무비율이 99%까지 치솟았습니다. 물론 인구와 성장률 등 예측치를 넣고 가상의 시나리오로 전망했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상황을 보고 있자면 그냥 지나칠 수도, 그냥 보고 넘길 수도 없습니다. 올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5%, 내년엔 46.7%, 2022년엔 50.9%, 2023년엔 54.6%, 2024년엔 58.3%로 전망됩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전임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재임 당시 국가채무비율을 2022년까지 40% 내외에서 관리하겠다고 밝힌 경로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모습입니다.
불과 2년 사이 국가의 재정상황이 180도 바뀌어 버렸습니다. 전문가들은 재정 적자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 기획재정부 제공
■ 추경, 또 추경
4차 추경(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게 통과된다면 기사 제목은 "1961년 이후 59년 만에 4차 추경 편성"으로 달릴 겁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960년생이니까 홍 부총리가 만 1살 때의 일이지요. 그런데 이제 추경에 대해 너무 무감각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부처 담당 기자들에겐 추경 편성은 큰 이슈입니다. 본예산과 별도로 국가예산항목의 내용을 변경시키기 때문이죠.
추경은 재정에서 남는 돈으로도 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재정여력이 없는 경우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해서 그대로 적자로 쌓입니다. 추경을 편성해도 다 못 썼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는 건 세밀하게 편성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못 쓴 추경액이 8조 원 가량 남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무조건 추경만 운운할 게 아니라 남은 돈부터 제대로 써보는 게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 countryeconomy
■ 피치(Fitch)의 경고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2월 의미심장한 경고를 남깁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23년 46%까지 늘어날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부의 2023년 전망치는 54.6%입니다. 정부 전망치대로만 가도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다시 스페인으로 가보겠습니다. 경제 위기 전엔 국가신용등급 트리플 에이(AAA)를 자랑하다 한 때 투기등급 직전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스페인의 악몽이 대한민국에서 재현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한번 늘어난 나라빚은 쉽게 줄이기 어렵습니다.
현재 스페인의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찾아봤습니다. 1분기 기준으로 "110.05%". 이 숫자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 송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