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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무서운 시간, 코로나 세대

등록 2020.09.08 21:51

수정 2020.09.08 22:05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나 여기 아직…"

윤동주는 시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식민지 청년의 암울하고 무기력한 시기를 '무서운 시간' 이라고 했습니다. "한번도 손들어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차라리 부르지 말라"고 탄식했지요.

노시인이, 코로나시대 비바람 먹구름에 어두운 하늘을 봅니다. "세상이 많이 헐거워졌다. 잡초가 무성해졌다. 가까운 사람 멀어지고, 먼 사람은 더욱 멀어진 날들"

코로나에 포위된 삶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옵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 일자리 잃은 실업자, 집집마다 벌이는 줄고 빚은 늘어갑니다.

그 '코로나 푸어'의 그늘 한구석에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시름에 사위어가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사회를 향해 힘찬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청춘들이, 굳게 닫힌 취업문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IMF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코로나 세대'의 등장입니다.

당장 5백대 기업 중에 하반기 채용을 안 하거나, 채용 계획을 못 세운 기업이 열에 일곱이나 됩니다.

10대 그룹만 해도 네 곳이 공채 대신, 경력자 포함한 수시 채용을 한다고 합니다.

청년들에겐 "원서 수백 장을 넣어도 어렵다"던 비명이 차라리 그리울 판입니다. 원서 넣을 기회, 낙방할 기회조차 없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옵니다. 암흑시대 젊은 시인의 탄식처럼 '손 한번 들어보지 못하는' 처지가 가혹합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 경제의 어두운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번 취업 적령기를 놓치면 만회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 고용문화와 노동시장입니다. 코로나 세대가 '잃어버린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청년의 미래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단순-단기 일자리 만드는 데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노사관계를 보다 건강하게 하고, 규제를 풀어, 기업의 의욕과 활력을 되살리는 데에도 무심한 듯합니다. 

나라 곳간을 열어 당장 배고픈 사람을 달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래도 나중에 곳간을 채울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차라리 나를 부르지 말라'는 윤동주의 외침이 절절하게 들릴 법한 시대입니다.

9월 8일 앵커의 시선은 '무서운 시간, 코로나 세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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