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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홍남기 부총리는 왜 '부대의견'을 남겼나

등록 2020.09.12 11:00

[취재후 Talk] 홍남기 부총리는 왜 '부대의견'을 남겼나

안일환 기획재정부 2차관이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4차 추경안을 발표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 "소득 하위 70%로 하자"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으로 가보겠습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지원대상을 선별적으로 할지, 아니면 보편적으로 할지 의견이 크게 갈렸기 때문입니다.

재정을 담당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소득 하위 70%까지 지급하되, 50% 이하 구간는 100만 원, 50~70% 구간은 50만 원으로 차등 지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총선을 코 앞에 뒀던 당시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 등은 '전 국민 지급'으로 맞섰죠.

서로 싸우기 직전까지 갔다고 전해진 팽팽한 회의의 결과를 어땠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홍남기 부총리의 의견은 묵살됐고, 결국 전 국민 지급으로 결론났습니다.  

■ 통신비 2만 원

4차 추경이 확정된 지난 10일(9월10일)로도 가보겠습니다. 만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1인당 1회선에 한해 통신비 2만 원이 지원됩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만 9280억 원입니다. 4차 추경금액이 7조 8000억 원이니까 비율로 따지면 11.8%를 여기에 쓰는 겁니다.

브리핑에서는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선별지원에서 사실상 보편지원으로 바뀌 이유는 뭐냐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의미심장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청년층이라든가 노년층에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기를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어제 오전에 대통령님과 당 대표간의 어떤 간담회에서 최종적으로 13세 이상 국민들에게 드리는 걸로 결정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정부는 선별지원을 주장했지만 결국엔 묵살됐다는 말이죠. 1차 긴급재난지원금 때와 똑같은 상황입니다. 재정의 파수꾼인 경제부총리의 의견은 힘이 없었습니다.

 

[취재후 Talk] 홍남기 부총리는 왜 '부대의견'을 남겼나
관리재정수지 적자 추이 / TV조선 뉴스 화면


■ 1~4추경이 남긴 것


1차 긴급재난지원금에 이어 2차 재난지원금, 4차 추경도 확정됐습니다. 올해 본예산에 1~4차 추경을 더하니까 554조 7000억 원이 나옵니다. 내년 예산 555조 8000억 원과 거의 맞먹는 돈입니다.

그러면 정부의 가계부를 한번 보겠습니다. 실질적인 재정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118조 6000억 원 적자이고, GDP 대비 채무비율은 6.1%입니다. 나란히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엔 37조 6000억 적자, 채무비율 1.9%였던 것을 감안해서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한번 늘어난 나라빚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재정적자는 결국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어서 결국 이렇게 늘어난 빚은 국민몫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취재후 Talk] 홍남기 부총리는 왜 '부대의견'을 남겼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5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 "기록이라도 남기겠다", 이번엔
 

다시 지난 3월의 총리공관으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이날 회의의 최종 보고서는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갔습니다. 여기에 전에 없던 이례적인 '부대의견'이 달렸습니다. 내용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전 국민 지급에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재정의 파수꾼으로서 마지막 책무라고 느꼈을까요, 아니면 역사적 교훈을 남기려는 의도였을까요, 급격한 재정지출을 막지 못한 면피용 의견이었을까요. 의도야 어쨌든 정부 재정지출이 크게 늘어나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기록이라도 남기겠다고 한 건 분명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을 겁니다.

'부대의견'은 힘이 없지만 역사엔 남습니다. 훗날 지금의 악화된 재정을 되짚어볼 때 저 '부대의견'은 한 줄 이상의 무게를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을까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경제효과가 검증도 안된 통신비 예산으로 1조 원 가까이 편성하면서도 이번엔 아무 의견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추경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오래 가는 재정지속성' 못지 않게 '함께 가는 재정책임성'을 택했다"고 말했습니다. 혼자 '부대의견'을 남겼던 결기는 사라졌고,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를 기록한 경제부총리를 선택했습니다.
 

 

[취재후 Talk] 홍남기 부총리는 왜 '부대의견'을 남겼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2월 예우회 정기총회 및 신년회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장병완 전 국회의원실


■ 아직도 유효한 '예우회'의 질타

 올해 2월 10일, 전·현직 예산관료 모인인 '예우회'가 정기총회 겸 신년인사회를 열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초청했습니다. 예우회는 1985년 예산 분야 공무원의 친목모임을 출범하면서 지금까지도 예산 정책의 경험과 노하우를 현직 공무원들에게 전수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원로들은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질책했습니다.

"재정 만능주의와 큰 정부를 경계하라."

"별도의 재원마련 대책이나 지출 구조조정 없이 언제까지 이렇듯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 있겠나."

"무분별한 재정 확대와 정부 비대화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가하고 엄격한 재정준칙을 적용해야 한다."

예산에 잔뼈가 굵은 원로들은 지금의 재정상황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당시 질책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 상황이었지만 예산 당국자들에겐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이날 홍남기 부총리는 "올해 안에 반드시 재정준칙(재정지표가 얼마 이상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준칙은 아직도 발표되지 않습니다. / 송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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