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추석에 안 와도 된다

등록 2020.09.11 21:50

수정 2020.09.11 21:55

서울역 광장 가득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며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휘두르는 바람에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 귀성 열차표 예매 때마다 벌어지던 풍경입니다. 1960~70년대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터졌던 귀성객 압사사고 이후 짜낸 예방책이 장대 휘두르기였던 겁니다.

사람들은 오리농장 오리떼 취급을 당하면서도 고향에 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지요. 그 개발시대, 도시 공사판을 떠돌던 아들은 고향집 살림에 보태지 못하는 게 늘 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추석에 내려온 김에 추수까지 끝내고 집을 나섭니다.

어머니가 동구 밖까지 따라와 꼬깃꼬깃 지폐 몇 장 쥐여줍니다.

"차비나 해라. 있어요, 어머니."

1990년대 말까지도 서울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스무 시간 걸리는 귀성길이 예사였습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각박해도 명절 귀향만큼은 꼭 지켜야 할 미덕이었습니다. 누구도 그 거대한 행렬을 꺼리거나 말릴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뒤집는 추석이 3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역설적 코로나 시대에 맞이하는 첫 명절이지요.

이 무렵 으레 물어보는 귀성 의향 조사 결과부터 판이합니다. 둘 중 한 명(47%)이 추석에 이동하지 않겠답니다. "정부의 이동 자제 권고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다섯 중 셋(62%)이고, 60대가 열에 일곱(68%)으로 유난히 많습니다.

자식 보는 기쁨보다 자식 걱정이 앞서는 겁니다. 머뭇대던 정부도 "귀성과 성묘, 벌초를 자제하고 되도록 집에 머물러 달라"고 권하고 나섰습니다.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도 취소할 움직임입니다. 명절마다 온 나라에 물결치던 민족의 귀소본능도 코로나라는 재앙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이 덧없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버이와 고향은, 우리네 마음을 더 애틋하고 더 자애롭게 비춰주는 등불입니다. 미당이 구성지게 노래했듯, 때로 그리움은 만남보다 진합니다.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데,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9월 11일 앵커의 시선은 '추석에 안 와도 된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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