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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통신비는 됐고, 더 어려운 사람 도와주세요!"

등록 2020.09.14 16:38

■ 핫한 통신비

정부는 59년 만에 4차 추경을 편성했습니다. 이 자체로도 이슈였지만 뚜껑을 열고보니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통신비 2만 원'입니다.

만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업무가 증가해 통신비 부담이 커졌다는 게 정부가 밝힌 정책의 배경입니다. 거의 전 국민에게 지급되고,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게 분명한데도 왜 주말동안 '통신비 2만 원'이 이슈였을까요.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취재후 Talk] '통신비는 됐고, 더 어려운 사람 도와주세요!'
서울 종로구 휴대전화 대리점에 통신비 지원 안내문이 붙어있다. / 조선일보DB


■ 불필요한 논쟁

말이 마굿간에서 달아났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을 잡을지 빨리 생각해야겠죠. 거기서 말이 왜 있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따져보는 건 도움이 안됩니다.

통신비 논란이 그렇습니다. 집 나간 경제를 잡기 위해서 추경으로 하방압력을 받는 경기를 떠받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당초 정부가 밝힌 추경의 배경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통신비가 어디서 나온 건지, 왜 주는 건지, 당신은 동의하는지 등의 불필요한 논쟁을 하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습니다. 통신비 지원이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순 없으나, 지금 상황에 맞지 않다는 거겠죠.

통신비 지원이 발표된 직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영세 자영업자나 골목 매출을 올려주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 아쉽다"고 말했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통신비 예산으로 무료 와이파이망 확대하자"며 반대의견을 밝혔습니다.

정부로서는 거센 반대에 직면했으나 이미 발표한 정책을 뒤집긴 어려우니 머리가 아플 겁니다.

 

[취재후 Talk] '통신비는 됐고, 더 어려운 사람 도와주세요!'
지난 10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4차 추경안을 발표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제공


■ 검증은 아직

지난 10일, 이 정책을 발표한 홍남기 부총리의 말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통신비의 경제적 효과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가계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고요. 다만, 이와 같은 경제적 승수효과에 대해서는 조금 더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미리 분석하고 정밀하게 설계해서 발표하는 게 맞는 순서가 아닐까요. 가계부담을 완화하는 건 확실하지만 경제효과를 확신하지 못한다면 반쪽대책일 뿐이죠.

지금 경제상황이 불확실해서 전에 써보지 못했던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촘촘한 설계와 탄탄한 논리,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식 실험은 직무유기나 다름 없습니다.

 

[취재후 Talk] '통신비는 됐고, 더 어려운 사람 도와주세요!'
지난 11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KBS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 KBS 화면 캡쳐

 
■ 방어 나선 청와대

대책 발표 다음 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4차 추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통신비 논란에 대해서도 빼먹지 않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 가구에 3~4인 되면 6~8만 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가정에게는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금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어려운 가정에겐 도움이 되겠죠. 그렇다면 '어려운 가정'만 골라내서 지원했어야 합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선별지원을 주장했다고 했죠. 왜 이 의견은 무시했을까요.

대책을 발표한 지 4일이 지난 오늘, 이번엔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나섰습니다. 통신비 지원을 비판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경제효과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 그만큼이 통장에는 남아 있는 것이고, 그걸 국민들이 아는 한 그게 무의미하게 증발해버리는 금액은 아니지 않는가."

통신비 2만 원을 받은 국민들이 소비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들립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통신요금내역을 문자로 받고, 자동이체 해둡니다. 2만 원이 덜 나갔다고 2만 원 어치 소비를 더 늘릴 생각이 없고, 반대로 2만 원이 더 나갔다고 2만 원 어치 소비를 줄일 생각이 없습니다. 통신비가 폭발적으로 늘거나 줄지 않는 한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거라는 생각이 쉽게 듭니다.

 

[취재후 Talk] '통신비는 됐고, 더 어려운 사람 도와주세요!'
통신비 지원에 대한 국민 설문조사 결과 / YTN 화며 캡쳐

 
■ 대선공약의 시즌2?

청와대와 통신비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통신요금 기본료를 폐지해 가계부담을 덜어준다고 했었습니다. 취임 초기에 밀어붙였지만 실패했었죠. 어쩐지 지금의 상황과 겹쳐 보입니다. 청와대의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이 나란히 나서 방어하는 모습이 흡사 대선공약을 사수하는 첨병처럼 느껴지니까요.

혹시나 이루지 못한 대선공약을 간접적으로 지금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면 YTN의 '통신비 지원 설문조사'를 꼭 보셨으면 합니다. 응답자의 58.2%가 잘못된 일, 그러니까 10명 중 6명이 반대의견을 밝힌 것이죠. 대책이 발표된 다음 날인 11일에 조사한 것이니 지금처럼 논란이 커지기 전인 걸 감안하면 더 의미가 있는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 다수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중간에 낀 통신사도 이익이 크지 않다고 해명하는데 청와대와 여당만 필요한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훗날에 대선 공약이었던 통신비 경감을 실현했다고 자평하는 건 아닌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취재후 Talk] '통신비는 됐고, 더 어려운 사람 도와주세요!'
전라도 광주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조선일보DB

 
■ 위로보다 필요한 것

통신비가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는 건 예산 규모도 한몫했습니다. 4640만 명에게 2만 원씩 지급하니까 산술적으로 9280억 원이 필요한 셈이죠. 4차 추경의 총 규모가 7조 8000억 원인데, 전체 11.8%를 통신비가 차지합니다. 연일 최악의 재정적자라고 하는데 1조 원 가까운 금액을 투입하면서 이유부터 납득이 안되니 이슈가 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을까요.

통신비 발표 하루 전,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코로나로 지친 국민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라고 동의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로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가의 위로가 필요한 시점일까요. 철저한 방역과 정밀한 정책으로 국민의 건강과 국가경제를 지키는 게 우선일 겁니다. 지금 국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내자고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설익은 정책과 어설픈 위로보다 국가재정을 한 푼 허투루 쓰지 않고 더 필요하고 어려운 곳에 알맞은 정책을 원하는 게 요즘 국민들의 보통 상식일 겁니다. 위로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 송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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