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전체

[단독] 태풍 휘몰아치던 밤, 한남동 '그놈'은 젊은 여성의 뒤를 밟았다

등록 2020.09.15 16:22

수정 2020.09.15 16:26

태풍 '마이삭'으로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지난 2일 밤, 서울 한남동. 20대 여성 A씨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A씨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한 남성이 달려들었다.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 같았던 29살 남성 B씨였다.

B씨는 A씨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뒤 몸을 더듬었다.

A씨는 소리쳤지만 빗소리에 묻혔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집은 A씨 혼자 사는 집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B씨는 A씨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딸의 비명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B씨를 직접 잡기 위해 뛰어나왔다.

B씨는 곧바로 도망쳤다. 자신을 쫓아오는 A씨 아버지를 피해 5m가 넘는 담을 뛰어넘었다.

착지를 잘못해 양쪽 무릎에선 피가 나기 시작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B씨의 도주행각은 30여분 만에 끝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한남역 교차로 인근에서 바지 양쪽 무릎 부분이 찢어진 채 피를 흘리며 걸어가던 B씨를 발견하고, 불심검문을 통해 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술에 취해 있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3일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5일 밝혔다.

법원은 다음날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고,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지난해 5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신림동 원룸 사건'이다.

조모씨라는 남성이 새벽 6시쯤 신림역 인근에서 귀가하던 여성의 뒤를 따라갔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집으로 따라 들어가려다 실패했다.

여성이 집에 들어간 뒤에도 조씨가 피해 여성의 현관문 앞을 10여분 간 서성이는 CCTV가 공개되자 여론은 들끓었다.

경찰은 여론을 등에 업고 주거침입강간과 주거침입강제추행 혐의 등으로 조씨를 구속 송치했다.

그러나 1·2심은 "조씨에게 강간 또는 강제추행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1년을 선고했고, 대법원 또한 이 판단을 그대로 수용했다.

이번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이 A씨를 상대로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건 지난 번 신림동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그 골목길엔 위급상황을 위해 설치해 놓은 안심벨 하나가 가로등에 달려있었다.

누르면 곧바로 경찰서로 연결된다.

그렇지만 그날 밤 A씨는 그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주변 곳곳에서 뻗쳐오는 으슥한 손길에 비해 법과 제도는 아직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 최민식 기자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