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형제

등록 2020.09.18 21:52

수정 2020.12.15 14:31

벌써 30년도 넘은 영화 '레인맨' 입니다. 이기적인 동생이 자폐증을 앓는 형과 여행하면서 형제애를 깨닫는 이야기지요. 동생은 어릴 적 자기를 보살펴줬던 레인맨을 상상 속 친구로 여겼다가 정체를 알게 됩니다.

"그럼 형이 레인맨이야? 나한테 노래 불러준 게 형이었어?" 

형이 기울였던 사랑은 동생을 진지한 새 삶으로 이끕니다.

시인이 동네 목욕탕에 갔더니 초등학교1, 2학년쯤 되는 아이가 고만고만한 동생을 씻기고 있습니다.

때밀이 침상에 동생을 눕혀놓고엄마처럼 야무지게 때를 밀어줍니다.

"엉덩이 어깨 발바닥 배 사타구니 구석까지 손을 넣어, 예쁘게 반짝반짝 닦아주는 것이었다."

시인은 "형제여,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라"고 중얼거리다 눈물을 떨구고 말았습니다.

며칠 전 초등학생 형제가 둘이 있다 불이 났습니다. 출동한 소방관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 형제를 발견했습니다. 열 살 형은 침대에엎드려 있었고, 여덟 살 동생은 누군가 이불을 둘러친 책상 아래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형은 몸 절반에 중화상을 입어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동생도 아직 의식을 되찾진 못했어도 이불 덕분에 다리에 가벼운 화상을 입는 데 그쳤습니다. 소방관들은 "형이 동생을 구하려고 책상 아래로 밀어 넣고 이불로 감싼 것 같다"고 했습니다.

형제는 저녁이면 편의점에 와 아동급식카드로 먹을거리를 사가곤 했다 합니다. 동생은 늘 형을 잘 따랐고, 한번은 형이 고무장갑을 사러 와서 물었더니 자기가 설거지를 한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이웃들은 엄마가 형제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세 차례 신고했고, 지난달엔 경찰이 엄마를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하기도 했습니다. 제때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다면 피할 수 있는 비극이었던 겁니다. 

밀려드는 연기 속에서 갈라지는 목소리로 119에 "살려주세요" 외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저 가슴이 턱 막힐 뿐입니다. 가족과 사회, 정부가 방치하는 사이, 오직 열 살 형만이 동생을 지키는 돌봄의 그늘을 보며 저부터 뼈아픈 죄책감을 느낍니다.

9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형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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