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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저도 휴가 보내주세요

등록 2020.09.23 21:51

시인은 오래 전 스물일곱 살에 군대에 갔습니다. "졸병이 왜 이리 점잖냐"며 쥐어박는 선임병 등쌀에 시달렸고, 완전 군장하고 연병장 스무 바퀴를 돌기 일쑤였습니다.

"아, 미운 스물일곱 살의 원주 횡성. 그 배고프고 을씨년스러운 깡통 계급장 시절…"

그 시절 선임들이 후임 닦달할 때 "군대 참 좋아졌다"고 하던 말이 이제는 그대로 들어맞는 군대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아파도 아프다는 말 쉽게 못 꺼내는 건,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1년 야간행군을 하던 훈련병이 탈진해 의무실에서 해열제 두 알을 받았습니다. 병사는 이튿날 숨졌고 사인은 급성 뇌수막염이었습니다.

2016년엔 부대 근처 개인 의원에서 백혈병 소견을 받은 병사가 군 병원에서 곧바로 숨졌습니다.

지난 9일 국방부 콜센터에 960여 건이 걸려왔던 민원전화가, 나흘 뒤 2천332건으로 두 배 넘게 뛰었습니다.

10일 국방부가 "추미애 장관 아들의 전화 휴가연장이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한 뒤로 민원이 급증한 겁니다. 특히 부모 항의전화가 많았다는 게 민원실 관계자 얘기입니다. 여당 원내대표가 "카톡으로 휴가 연장이 가능하다"고 말한 뒤로는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내부에서는 그냥 어이없어하죠." "위에서 안 해주잖아요. 평범한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어떤지,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의료실태를 보시지요. "아프다는 말을 자유롭게 못한다"는 병사가 열에 셋이고, "간부나 선임 눈치가 보여서" 라는 이유가 절반을 넘습니다. "민간병원 이용이 자유롭지 않다"는 병사도 열에 셋입니다. 가정형편이 좋은 병사가, 그렇지 않은 병사보다 민간병원 입원을 더 많이 한다는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이런 현실에서 병가를 연장하고 거기에 개인 연가까지 추가해 23일 연속 휴가를 간 게 과연 정당하고 공평한 처사였는지 도무지 의문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추 장관 아들과 비슷한 조건에서 휴가 연장을 받지 못한 사례에 대해 국방장관이 했던 말을 음미해 보겠습니다.

"지휘관이 좀더 세심하게 배려를 해서 했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규정대로 하는 게 현실이라는 뜻은 아닌지요? 이 애매모호한 답변이 거꾸로 말해주는 진실, 다들 이해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9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저도 휴가 보내주세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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