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게와 가자미의 시간

등록 2020.09.25 21:51

수정 2020.09.25 22:56

비익조라는 상상의 새가 있습니다.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지어야만 날 수 있다고 하지요.

비목어라는, 눈 하나 달린 물고기도 있습니다. '외눈박이 사랑' 이라는 시도 있듯, 비익조와 함께 부부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비목어는 현실에 있습니다. 가자미 광어 도다리같이 눈이 한쪽에 쏠린 물고기를 아우르는 호칭입니다.

흔히 "눈치를 살피다 가자미 눈 됐다" 고들 말합니다.

가자미가 고백합니다.

"밟으면 밟히고, 누르면 눌리고, 갖은 수모와 굴욕과 수치를 견디며, 납작 엎드려 살았노라고.."

게는 창자가 없다고 '무장공자', 옆으로 간다고 '횡행개사'라고 부릅니다. 게를 선비에 비유한 존칭이지요. 배알도 없고, 때를 가려 처신을 삼갈 줄도 모르고, 게걸음만 하는 행태를 잘 집어낸 말이기도 합니다.

북한이 우리 국민을 총살해 불태운 야만의 범죄 이후 우리 군과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들은 다름아닌 가자미와 게의 시간이었습니다.

군은 끔찍한 순간들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대응과 구출은커녕 제지하겠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놓고선 북한이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국민이 죽어가는데 설마라니요!

새벽 한 시 청와대에선 긴급 장관회의가 열렸지만 국제 사회에 종전 선언을 촉구한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사전 녹화여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공허한 얘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가 다음 날 아침에서야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국민이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바다 위에서 총격을 당하고 불태워진 뒤 10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신임 장성들의 신고를 받았고 아무 내색 없이 평화를 강조했습니다.

이어 여러 장관을 대동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우리 국민이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했다면 국가의 입장에서는 전쟁상태로 봐야 합니다. 어떤 수위의 대응을 할 것인지는 그 다음 일입니다.

그런데도 지난 나흘 대한민국 정부가 한 일을 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어떤 의지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판단력이 없는 것인지, 능력이 없는 것인지, 의지가 없는 것인지?

이제 국민은 다시 묻습니다. 지금 대통령과 정부와 군은 도대체 누구의 눈치부터 살피고 있습니까? 분노와 충격에 빠진 국민입니까, 아니면 문명사회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광기의 범죄를 태연히 저지른 북한입니까.

9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게와 가자미의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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