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국민이 죽었습니다

등록 2020.09.28 21:53

수정 2020.09.28 22:08

시인이 물오징어를 다듬다 생각합니다.

"간도 쓸개도 배알도 뼛골마저도 다 빼어 주고… 목 고개 오그려 쪼그려 눈알조차 숨겨 감추고, 이 눈치 저 코치로 헤엄쳐왔던가."

웃는 얼굴도 드러낼 때, 숨길 때가 따로 있습니다. 시인이 묻습니다.

"나는 지금 웃고 있습니까. 때와 장소를 아는 고양이입니까. 입꼬리를 아코디언처럼 접었다 펼치며, 웃는 얼굴을 연습하는 사람들보다, 더 사람 같은 고양이입니까."

지난 3월 북한 김여정이 "겁먹은 개"라고 청와대를 조롱한 다음 날,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국민을 위로하는 코로나 친서를 보내왔습니다. 뺨 때리고 어르는 격이었지요. 그런데 뺨을 맞았던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보냈다"고 반겼습니다.

우리 국민 살해사건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김 위원장 통지문 한 장에 정부 표정이 일시에 달라졌습니다. 대통령이 주재한 장관회의는 "긍정적"이라고 발표했고, 국정원장은 "김 위원장이 총살 지시를 안 한 것 같다"며 서둘러 면죄부를 발부했습니다.

'미안하다'는 '송구하다' '죄송하다'와 달리 아랫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 '미안하다'를 두 번씩이나 썼다며 통일부 장관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습니다.

규탄의 목소리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모기소리만큼 사그라들었고 대신 종전선언과 관광 재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점입가경은 여권 인사들이 김 위원장을 향해 일제히 쏟아낸 찬사입니다.

"진짜 계몽군주 맞는데…"
"통 큰 측면인데…"
"굉장히 선진화된…"

이복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해 시신을 전시했다는 전제군주에게 갑자기 계몽의 월계관이라니요. 심지어 광복회장은 이번 사건 근본 원인이 "친일세력의 민족 이간"이라고 또 친일 딱지를 붙였습니다. 이런 우리 정부와 집권세력을 지켜보는 북한의 입꼬리가 어떻게 됐겠습니까.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무한책임을 다짐하곤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천 낚싯배 전복사고 때는 바로 다음 날 묵념하며 애도를 표했던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국민이 이렇게나 처참한 죽음을 당했는데도 위로와 자책 한마디 없이 침묵하더니 엿새 만에야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은 "사람이 먼저"라던 대통령에게 또 묻습니다.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습니까?

9월 28일 앵커의 시선은 '국민이 죽었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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