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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열다 만 판도라 상자

등록 2020.10.21 21:50

영화 '판도라'는,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방사능에 희생되는 재앙을 다뤘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로부터 과학적 근거와 개연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지진규모와 원자로 폭발압력보다 우리 원전의 방어능력이 훨씬 크고. 이중 삼중으로 둘러친 안전설비도 무시됐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된 후쿠시마 원전 폭발 때 방사능에 쏘여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피 과정에서 천6백명이 숨진 것이, 방사능 때문인 것처럼 세상에 퍼져나간 겁니다.

아무리 끔찍한 현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도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허구와 현실을 분간하지 못한다면 곤란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눈물을 흘리며 '판도라'를 관람한 뒤 말했습니다.

"원전 건설을 막고, 탈핵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

물론 영화 한 편 보고 탈원전을 결심한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만 대통령의 이 발언은 두고두고 현 정부 탈원전 정책의 가이드라인처럼 인식돼 온 것도 사실입니다.

월성원전 1호기 폐쇄에 관한 당초 산업자원부 보고서는 '2년 더 운영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문 대통령의 한마디에 '즉시 가동중단'으로 바뀌었다고 감사원이 밝혔습니다.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되느냐"는 대통령 발언을 당시 백운규 장관이 전해 듣고 보고서를 고치도록 했다는 겁니다.

감사원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도 정부가 관여해 불합리하게 낮게 계산됐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산자부 공무원들이 감사 전날 주말 한밤중에 4백 건 넘는 관련자료를 삭제했다는 사실입니다.

대통령부터 조기 폐쇄를 재촉했는데 이 모든 일들이 청와대가 무관하다고 한다면, 이거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자는 겁니다.

하지만 감사원은 책임자 누구도 고발하지 않은 채 공무원 두 명의 징계만 요구했습니다. 폐쇄 자체의 옳고 그름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감사결과를 내놓기도 전에 "이렇게 저항이 심한 감사는 처음"이라고 공개적으로 토로한 바 있습니다. 지난 열석달동안 얼마나 심한 압박과 방해가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말일 겁니다.

원전이든 탈원전이든 집권세력의 철학에 따라 선택하고 선거로 심판을 받는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 책임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잘못된 판단을 숨기기 위해 공무원까지 동원됐다면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감사원은 잘못된 '확증편향'으로 만들어진 탈원전의 신화가 어떤 모순을 품고 있는지 세세히 기록해 두었습니다. 다만 그 판도라의 상자를 완전히 열어젖히는 일은 후대에 맡겼을 뿐입니다.

10월 21일 앵커의 시선은 '열다 만 판도라 상자'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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