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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우린 원래 그래

등록 2020.11.04 21:58

수정 2020.11.04 21:58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작은 불상 셋이 차례로 앉아 있습니다. 나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세 마리 일본 원숭이상도 처신의 무거움을 말하지요.

풍자와 야유 넘치는 연작시 '반성'을 30년 넘게 천3백편이나 써 온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선풍기를 발로 눌러 끄다 생각합니다.

선풍기가 자존심이 상하겠구나… 그는 공손하게 엎드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 이빨 같은" 스위치를 두 손으로 눌러 끕니다.

그가 술에 취해 수첩에 뭐라고 써놓았는데 술이 깨니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글씨가 보였습니다.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하지만 세상에는 반성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원래 이런 놈이야"라고 깝죽대는 삼류 조폭처럼 말이지요.

"삼겹살 집으로 멧돼지가 돌진했다. 더이상 잃을 게 없는 놈이다. 잃어봤자 삼겹살 정도?"

민주당이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려고 당헌을 바꾼 뒤 변명과 궤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 최고위원은 "국민도 이미 시장 후보를 낼 거라고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고 눙치는 말처럼 들립니다만, 거기에 국민을 왜 끌어들이는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그는 "닉슨이 사퇴했는데도 공화당은 후보를 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공화당은 '잘못을 저지르면 공천하지 않는다'고 국민에게 약속하지도, 당 헌법에 명시하지도 않았고, 국민을 기만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다른 최고위원은 "헌법 원리에 안 맞는 당헌" 이라고 했습니다.

과거 앞장서서 이 당헌을 만들었던 법조인 대통령부터 욕보이는 말입니다.

민주당은 당원 찬성률을 내세워 "당원들이 뜻을 모아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투표율이 당헌이 정한 유효투표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나자 "의사를 묻는 과정이었을 뿐"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내세우겠다"고 합니다.

정당의 도덕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모래밭에서 말하는 이 '도덕'은 대체 무엇입니까? 문단 원로를 고발했던 시인이 얼마 전 지도층의 위선을 향해 터뜨린 외침을 떠올립니다.

"민주주의? 자유? 평등? 혁명? 그런 거룩한 단어들 내뱉지 마시길…"

11월 4일 앵커의 시선은 '우린 원래 그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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