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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

등록 2020.11.06 21:51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늦가을 낙엽은 하염없이 날리고, 남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흘 휴가를 나온 중년 죄수와 젊은 위조지폐범의 짧은 만남, 긴 이별을 그린 '만추' 입니다.

세 번 다시 만들어 김지미와 이정길, 김혜자와 정동환, 현빈과 탕웨이가 연기했지만, 역시 명편은 문정숙 신성일의 원작입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이세룡이 그 '만추'를 시로 썼습니다.

"늦게 도착한 엽서가 쌓이고 있다. 낙엽. 문정숙 씨의 푸른 근심 속으로 한 남자가 걸어온다…"

가을은 기다림과 체념, 미련의 계절입니다.

"널어놓은 빨래가 밤비에 젖고 있다. 아아 추워라."

밤비에 쓸쓸히 젖어가는 가을밤, 시인은 따끈한 차를 떠올립니다.

"이렇다 할 일 없고, 기인 긴 밤. 모과차 마시며, 가을 빗소리"

빗소리를 따라온 가을이 빗소리에 실려 깊어가는 밤입니다. 오는가 싶더니 벌써 떠날 차비를 하는 만추입니다. 등불 아래 시집 한 권 펴놓고 싶어집니다.

가을을 '등화가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송나라 시인이자 사상가 한유가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장시 한 구절이지요. 그보다 이 황량하고 스산한 시대에 던지는 가르침은, 시 맨 끝에 있습니다.

"사사로운 정, 은(恩)과 올바른 의(義)는 서로 어긋나는 법"

그런데 밖으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척하면서 안으로는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신경심리학에서는 '사람이 권력을 쥐면 뇌가 바뀐다'고 말합니다.

어제 판사 출신 여당 의원이 선배 대법관에게 거듭 다그쳤습니다.

"(예산 3천만원을 따려면) 의원님들 살려주십시오 한번 하세요…" 

무게 6그램, 그 금배지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 바꿔 놓은 것일까요? 국민이 맡긴 돈을 권세부리는 쌈짓돈으로 아는 그 호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집니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또 어떻습니까? 

"국민 전체가 성인지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기회…" 

양성평등을 주창해온 학자가 장관이 되더니, 누구보다 먼저 성인지 감수성을 학습해야 할 사람으로 바뀐 듯합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항소심에서까지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표정 역시 반성이나 참회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가을은 속죄와 참회, 감사와 은총의 기도를 올리는 계절입니다. 세상에는 영혼을 구원받아야 할 속된 존재가 많지만, 용서와 사랑은 인간이 아니라 하늘의 몫입니다.

11월 6일 앵커의 시선은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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