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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외교장관은 왜 미국을 갔을까

등록 2020.11.11 21:51

지난주 SNS에서 화제가 됐던 이 장면,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 공무원으로 등장한 나무늘보가 속 터지도록 느리게 스탬프를 찍습니다.

느려터진 미국 대선 개표를 풍자하는 것이지요.

나무늘보는 하루 열여덟 시간씩 나무에 매달려 잠을 자고, 어쩌다 내려와서도 1초에 25센티미터를 움직입니다. 맹수를 피해 높은 나무에서 잎사귀만 먹고 살면서, 쓰는 에너지를 줄이려고 움직임을 극단적으로 줄인 겁니다.

코알라는 더 잠꾸러기이고 아예 땅에 내려오지도 않습니다. 세상의 시간과 동떨어진 삶이어서 올해 초 호주 산불 때 멸종위기에 몰리기도 했지요.

매미는 다 자란 성충의 등딱지를 째고 허물을 벗은 뒤 날아가 버립니다. 텅 빈 허물은 그 뒤로도 며칠씩 나무를 부둥켜안고 매달려 있습니다.

격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한 국가의 외교가 그런 식이라면 과연 남아남을 수 있을까요.

강경화 외교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것도 대선이 끝나자마자 말이지요. 외교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행보입니다.

무엇보다 바이든의 우세를 점치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 사흘 뒤 이런 약속을 잡은 것 자체를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그 쪽에서 요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중히 거절하거나 시간을 늦출 수는 없었을까요?

가뜩이나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우리 외교장관이 폼페이오 장관을 만난 사진을 보면서 바이든 캠프에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게다가 바이든 캠프에는 외국 정부 인사 접촉금지령이 내려져 있다고 합니다. 4년 전 트럼프 캠프 사람들이 러시아 측과 접촉해 대선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을 잘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강 장관이 바이든 측 인사들을 만난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될 상황은 아닌 듯 합니다.

그래서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외교 참사에 가깝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미국 정권 교체기마다 등장하는 구호가 '누구만 빼고 다' 라는 전 정권 뒤집기입니다. 부시는 "클린턴만 빼고", 트럼프는 "오바마만 빼고"를 외쳤지요. 트럼프가 워낙 극단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바이든의 '트럼프만 빼고'는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정책 전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더 신중하게 더 철저하게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재삼재사 고민하고 행동했어야 합니다. 용감한 것이 게으르고 무능한 것 보다 못한 경우도 있는 법입니다.

11월 11일 앵커의 시선은 '외교장관은 왜 미국을 갔을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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