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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공수처장 추천위원님들, 두산-한화의 18회말 끝장 승부를 아시나요?

등록 2020.11.19 13:54

[취재후 Talk] 공수처장 추천위원님들, 두산-한화의 18회말 끝장 승부를 아시나요?

/ 연합뉴스

며칠 전 두산 베어스와 정수빈 선수에게 푹 빠져 10여년간의 모든 경기 기록을 되짚어보고 있는 저희 집 꼬마녀석이 말했습니다.

"18회까지 진행된 경기가 있어"

상식 수준 야구 지식 밖에 없던 저는 "13회면 끝난다. 꿈꿨냐"고 핀잔을 줬습니다. 그런데 한국시리즈 2차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어제, 그 꿈 같은 경기 결과를 기어코 찾아와서 보여주더군요.

'역대 최장' 연장 18회까지 진행된 2008년 9월 3일 두산-한화의 잠실 경기였습니다. 당시엔 무승부가 나지 않도록, 연장 횟수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취재후 Talk] 공수처장 추천위원님들, 두산-한화의 18회말 끝장 승부를 아시나요?
2008년 9월 3일 연장 18회까지 진행된 두산-한화 경기 / 연합뉴스

■ 18회말 연장 승부, 치열함 혹은 처절함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처절함이 느껴집니다. 경기는 자정을 넘겨 5시간 51분 진행됐다고 합니다. 17회까지 0-0 균형이 깨지지 않았고, 전광판이 넘쳐 보조 전광판에 스코어가 기록됐습니다. 양팀 투수는 도합 38개 탈삼진을 잡았고, 타석에 9번이나 선 타자가 3명이나 됐다고 합니다.

"경기 중간에 초콜릿이라도 선수들에게 사다주려 했는데, 운동장 편의점이 문을 닫아 못 샀다"

<한겨레>가 전한 당시 한화 구단 관계자의 말입니다.

홈팀 두산은 경기가 끝난 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에 귀가하는 팬들을 위해 5000원 상당의 햄버거 세트와 교환할 수 있는 도장을 일일이 입장권에 찍어줬다고 합니다. 대단한 선수들에 대단한 관중들, 대단한 구단 직원들이었군요. 경기는 결국 밀어내기 볼넷으로 1-0 두산이 승리했습니다. (곰과 독수리는 다음날도 연장 10회 경기를 치렀습니다.)

 

[취재후 Talk] 공수처장 추천위원님들, 두산-한화의 18회말 끝장 승부를 아시나요?
18일 공수처장 후보추천위 3차 회의 / 연합뉴스


■ "곧 끝날 듯 합니다. 저녁 약속 있는 분도 있어요"


저희 정당팀은 지난 13일과 어제, 두 차례 생중계를 준비했습니다. '마라톤 회의', '끝장토론'.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언론은 늦게까지 이어질 '격론'을 예상했고, 저희도 <뉴스9> 방송 시간까지 회의가 진행 중일 것을 대비한 것이죠. 결과는 모두 아시다시피 두 차례 회의 모두 오후 6시 반쯤 마무리됐고, 중계는 번번이 취소됐습니다.

킥오프 미팅 성격의 첫 회의를 빼면, 공수처장 후보들에 대한 검증과 상호 토론 기회는 두 차례 비공개 회의가 전부였습니다. 자연히 어제 회의도 늦은 시간까지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 가운데, 오후 서너시쯤 현장에 있던 취재기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7시전에는 끝날 것 같다'고요. 위원들 중에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아놓은 사람도 있더라'는 겁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회의는 4시간 30여분만에 종료됐고, 끝난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오후 6시 38분에 "야당추천 위원 2인이 회의를 계속하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위원회 결의로 부결되었고, 이로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추천위원회 활동은 사실상 종료되었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됐습니다.

백혜련 민주당 법사위 간사는 오늘 기자들과 만나 "(야당 추천위원을 제외한) 다른 추천위원들이 수만번 표결해도 결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서"라고 추천위 활동이 종료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7명 추천위원 중에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야당 추천위원 2명이 계속 반대를 하고 있어 어차피 결론이 안 날 것이란 의미입니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는 어제(18일)을 공수처장 후보 추천 '데드라인'으로 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야당은 이에 대해 "짜놓은 각본대로 폭주"(김도읍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 "생떼 쓰지 말고 후보 검증의 자리로 돌아오라. 억울한 척 연기하지 말고 야당과의 약속대로 국민을 위해 책임을 다하라" (배현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고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 18명 가운데 11명이 더불어민주당, 1명이 열린민주당입니다. 국민의힘 6석은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 수를 바탕으로,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무력화하고, 공수처장 후보(야당은 조국, 추미애 장관 같은 사람이 될 것으로 의심합니다)를 원하는 바 대로 선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취재후 Talk] 공수처장 추천위원님들, 두산-한화의 18회말 끝장 승부를 아시나요?
오늘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 기자회견 / 연합뉴스


■ 18회 연장 같은 '끝장토론' 기대는 무리였나


더불어민주당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야당은 공수처법에 반대하며 패스트트랙을 몸으로 저지했고, 법 통과 이후에도 헌재 판단을 기다리자며 야당몫 추천위원 추천을 미뤄왔습니다. 공수처가 '검찰개혁의 핵심'이요, '권력형 비리를 막을 수 있는 민주적 통제 장치'라고 믿고 있는 여당으로선 야당의 행태가 발목잡기로 밖에 보이지 않겠습니다.

어제 국민의힘 초선 모임에 강연자로 나선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들려준 '비하인드 스토리'는 의미심장합니다. 금 전 의원은 "제가 법사위 간사로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걱정했던 것은 국민의힘(구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설치를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청와대 측의 요청은 (2017년) 연말까지 공수처법을 통과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고 어떻게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중략) 청와대에서 오신 분이 이런 반박을 했습니다. '우리가 바보인줄 아느냐. 연말까지 공수처법이 통과되지 않을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강력하게 공수처를 추진하고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민주당은 개혁세력, 자유한국당은 수구세력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그러면 다음 해에 있는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국민의힘은 프레임 전쟁에서 지고 들어갔습니다. 이제 민주당을 막을 방법도 없어보입니다. 국민의힘은 너무 약합니다.

 

[취재후 Talk] 공수처장 추천위원님들, 두산-한화의 18회말 끝장 승부를 아시나요?
오늘 국민의힘 법사위원 기자회견 / 연합뉴스


■ 야구는 9회말부터라지요?


어제 NC와 두산의 플레이오프 2차전, 9회말 NC의 맹추격을 보면서 다시금 '야구는 9회말부터',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상투적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18회까지 5시간 넘는 혈투를 벌여도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팬들이 끝까지 박수 치고 소리 지르며 자리를 지키는 것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 아닐까요?

이렇게 '검찰개혁의 염원'을 담은 공수처는 출범하겠지만, 어제 추천위원회 회의는 두고 두고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민주당은 야당의 무조건적인 '비토권'을 문제 삼았지만, 야당이 추천한 후보들은 2표(야당 위원들 2명의 표겠지요) 밖에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애초에 '정부 ·여당이 원하는 후보만 세우려 했다'고 야당이 의구심을 갖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후보 검증을 위해 회의를 더 하자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제안을 뿌리친 것도 그렇습니다. 몇 시간, 아니면 하루 이틀, 아니면 며칠쯤,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늦어지는 게 그렇게나 큰 일 날 일입니까? 검찰개혁의 핵심이라는 공수처의 초대 수장을 뽑는데요.

여당이든 야당이든 상대방에게 '어차피 정해진 결론', '짜여진 각본'이 있다고만 의심할 게 아니라,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는 '끝장토론'도 해볼만하지 않았을까요. 해볼만큼 해본 뒤에 나온 결론이라야, 상대 당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수긍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어차피 정치에서는 무승부란 없지 않습니까. / 김수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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