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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동부구치소 사태 재현하려는 겁니까?"…방역대책 허술한 변호사시험 현장

등록 2021.01.05 20:10

수정 2021.01.05 20:12

[취재후 Talk] '동부구치소 사태 재현하려는 겁니까?'…방역대책 허술한 변호사시험 현장

시험장 향하는 변시 응시생들 / 연합뉴스

■"수험생을 사지로 내몰 생각이십니까?"

제10회 변호사시험이 오늘(5일)부터 4박5일간 치러집니다.

시험 엿새 전인 지난해 12월31일 오후 3시 41분, 한 응시생은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설마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지금의 동부구치소 사태를 낳은 것 아니냐"며 "변호사시험이 동부구치소의 재현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 그럼에도 모든 걸 운에 맡기고 변호사시험을 강행하시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A씨의 메시지에 이 차관은 9분 뒤, "저도 고민입니다"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 차관의 고민은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12월30일 변호사시험 응시생 66명이 낸 '제10회 변호사시험 시행공고' 헌법 소원에 대해 시험 전날인 4일 저녁, 헌법재판소는 "일부 인용" 판단을 내렸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무부의 변호사시험 유의사항 공지 중 '확진자는 시험에 응시할 수 없습니다'라는 부분과 '고위험자의 의료기관 이송' 부분 등의 효력을 본안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건의 결정 때까지 정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법무부 공고로 인하여 오히려 의심증상이 있는 수험생들이 증상을 감춘 채 무리하게 응시하게 됨에 따라 감염병이 확산될 위험마저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의 주장을 들어줬습니다.

■법무부 대응 발표에도 수험생들 "불안"

시험 전날 발표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법무부의 공식 대응에 대해 수험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대체로 "반가울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소송에 참여했던 B씨는 "헌재에서 요구한 게 의료시설이나 격리시설 마련하라는 건데, 그걸 시험 전날 저녁 9시에 전국 25개 고사장에 모두 마련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할 것 같아요?"라고 되물었습니다.

B씨는 "응시생이 3500명이니 전수검사 가능하지 않냐. 전수검사하고 음성인 사람들만 받겠다는 등 구체적인 기준을 애초에 세웠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앞서 법무부는 자가격리대상자에 한 해 1월 3일까지 자가격리 시험실 응시 신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확진자에 대한 대책은 "시험 응시 불가"가 전부였습니다.

헌재 결정 이후 확진자가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담겨 있지 않아 수험생들의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가 5번 뿐이라, 약을 먹어가며 시험을 치른 뒤 시험이 끝나고 확진 판정을 받는 경우가 나올 수 있지 않냐는 겁니다.

B씨는 "확진자 응시할 수 없게 한다, 창문 여는 것밖에 없다는 무책임한 대책 발표에 응시 취소한 사람들이 있다"며 "그런 분들은 어떻게 구제하냐"고 말했습니다.

■'을'이기 때문에…불안하지만 시험장 찾은 수험생들

수화기 너머로 B씨가 강하게 질타한 법무부의 부실한 방역 대책은 현실이 됐습니다.

오늘 오전부터 서울시내 수험장 세 곳을 둘러봤습니다.

투명한 창문 너머 보이는 고사장 책상 앞에는 가림막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가림막 없는 고사장 모습을 전하자, 서울대 고사장에서 만난 김시온씨는 "불안하다. 사실 저희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법무부 지침 내려온 것 밖에 따르는 것밖에 없고 그나마 할 수 있는게 가처분 같은 법적인 부분 뿐이지 않냐. 사실 이런 불안함 개선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침 마련이 필요했다"고 말한 뒤 고사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연세대 고사장 앞에서 입실 대기하던 C씨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와중에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어떤 대책도 없었고, 헌법소원을 할 때까지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거 그게 문제..."라며 법무부의 대응에 질타했습니다.

점심시간, 중앙대 고사장 앞에서 만난 응시생 D씨는 주위를 살피더니 "가림막 같은 것 없었다. 20명 정원 고사실에 18명이 있었는데,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며 고사장 내부를 설명했습니다.

■4박 5일간 감염 관리는 '셀프'

물론 법무부는 고사장으로 향하는 건물 입구에 발열체크를 할 수 있게 기계를 들여 놨고, 손 소독제를 사용하게 했습니다.

창문을 열고 시험을 치고, 점심시간 식사 역시 고사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뤄지도록 안내했습니다.

나름의 방역조치를 한 셈입니다.

이 같은 조치에 "어쩔 수 없지 않냐"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B씨는 "시험이 끝난 뒤 코로나19 검사도 받고, 2주간 자가격리를 하거나 가족들을 만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응시생들의 항의에도 무책임한 대응으로 일관하던 법무부 탓에 수험생들은 엄동설한에 벌벌 떨며 시험을 치르고, 감염 걱정까지 하게 됐습니다. / 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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