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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오세훈의 조건부 출사표?…출마 명분 쌓기인가

등록 2021.01.07 19:23

수정 2021.01.07 19:26

[취재후 Talk] 오세훈의 조건부 출사표?…출마 명분 쌓기인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농부가 내년 봄에 파종해야 1년 뒤에 큰 수확을 하는데 겨울에 조금 배가 고프다고 해서 종자 씨를 먹어버리면 1년 농사를 어떻게 짓겠느냐."

지난해 11월 한 방송에서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묻자, 오세훈 전 시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하지 않겠다며 들었던 비유입니다.

진행하는 인터뷰마다, 만나는 지인들마다 출마를 권유한다면서도 줄곧 '대선 직행'을 견지해온 오 전 시장이 7일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열어놨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 당으로 들어와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출마하지 않고 야권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입당이나 합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출마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출마선언이라고도, 불출마선언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애매한 입장에, 정치권에서는 오 전 시장의 속내를 두고 여러 추측이 쏟아졌습니다.

■ 지도부와 사전 논의된 '입당 압박' 카드인가?

국민의힘에서는 계속해서 안철수 대표에게 입당해 당내 경선에 참여하라고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안 대표는 "국민의힘 바깥에 있어야 중도 표가 나를 중심으로 결집한다"며 범야권 연대와 같은 방식을 주장해왔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후보 단일화는 적정한 시기가 도래하면 그 때가서 얘기하면 된다"며 "앞으로 (안철수 대표를) 만날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김 위원장과 안 대표의 만남에서 '당내 경선 참여'에 대한 제안이 있었을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안 대표가 더 이상 만나자는 요청을 안할 것'이란 말은 이제 안 대표가 답을 줄 차례라는 겁니다.

오 전 시장은 "이번 제안에 오세훈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없다. 오로지 야권의 역사적 소명인 야권 단일화가 중심에 있다"며 안 대표의 국민의힘 행을 설득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 '安 입당'이 출마 명분?…"왜 우릴 걸고 넘어지나"

표면적으론 야권 단일화와 정권 교체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당 안팎에선 출마선언을 위한 명분이었다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 당내에서 서울시장 출마 권유가 이어지자 '출마 명분'을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년 전 무상급식 문제로 스스로 사퇴했던 서울시장 직에 어떤 명분으로 출마한다고 설명해야할지 스스로도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출마의 변'을 위해 결국 야권의 화합과 안 대표의 입당을 조건으로 내건 건데, 정작 국민의당에선 불쾌감을 나타냈습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그 분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겠냐. 되지 않을 것을 알고 내건 조건"이라며 "사실상 출마 선언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출마 선언을 하려면 하면 되지, 왜 잘 준비하고 있는 우리(안 대표)를 걸고 넘어지냐"며 "공당의 대표에게 입당을 이야기하는 것은 예의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 고도의 정치적 계산 깔린 '여의도식 문법'

오 전 시장은 오늘 회견에서 "이번에 당선되는 시장은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사실상 6~9개월 정도로 시정을 파악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을 "당선일부터 시정의 큰 줄기와 세세한 디테일을 장악해 일에 착수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자평했습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처럼, 결론에 가선 '내가 서울시장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오 전 시장으로선 무엇보다 재도전의 명분이 필요했을 겁니다. 여기서 '조건부 출마'라는 방법을 찾은 듯 보입니다.

안 대표가 입당 또는 합당한다면 오 전 시장은 '야권 단일화의 초석을 놨다'는 공적을 쌓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서울시장 출마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직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은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해서도 "출마 의사가 강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해 이달 중순 입장을 낼 예정인 나 전 의원 측 김을 빼버린 셈이 됐습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김선동 전 사무총장은 "'여의도식 문법'이 이제 국민에게는 안 통한다"며 "본인의 거취는 스스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습니다.

자신의 출마 명분을 위해 다른 후보들의 거취 문제를 거론한 게 적절한 것인지 다시 곱씹어볼 문제입니다. / 이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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