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격렬한 말장난

등록 2021.01.07 21:48

수정 2021.01.07 21:53

대한민국 서쪽 끝에 격렬비열도가 있습니다. 이 득특한 섬 이름을 대개 '격렬 비열도'라고 띄어 읽습니다만 사실은 '격렬비 열도'가 맞습니다. '새들이 대열(列)을 지어(格) 날아가듯(飛)' 열두 개 섬이 늘어선 '열도' 라는 뜻이니까요.

시인이 그 이름에 매료됐습니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시인은 '격렬비열도'에서 자신이 겪었던 격렬하고 비열한 청춘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시적 패러디 '격렬한 비열'에서 저는 요즘 세태를 떠올립니다.

'거짓말로 참말 하기'라는 시와 시집을 낸 시인이 있습니다. '십 원짜리 동전을 주웠다'고 하면 시가 안 되지만 '다보탑을 주웠다'고 하면 시가 됩니다. 그렇듯 에둘러 말하는 거짓이, 진실을 보다 진실하게 드러낸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둘러댄다고 둘러댔다가 결과적으로 사실을 실토하는 셈이 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건 시가 아니라 말장난이라고 하지요.

"음주 후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고, 담배는 피웠지만 연기는 안 마셨다는 뜻입니까" "결혼식을 올렸지만 혼인신고를 안 했으니까 미혼이라는 건가요" 남인순 민주당 의원에게 날아든 질문들입니다.

남 의원은 검찰 수사에서 고 박원순 시장 피소정황 유출자로 지목된 뒤 엿새를 침묵하다 이런 해명을 했습니다. "피소되기 전, 시장 젠더특보에게 불미스러운 소문을 물어봤을 뿐"이니까 피소 사실을 유출한 게 아니라는 거지요. 정의당 논평처럼 "질문과 유출은 대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또 피소 전이면 유출이 아니라는 건가요.

남 의원이 여성단체연합 대표를 지냈고 민주당 젠더폭력TF 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 이르면 실망은 더욱 커집니다. 그런 여성운동가가 지난해 박 시장 의혹이 터진 뒤 열여드레를 침묵하다 결국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피해자' 대신 '피해호소인' 이라는 이상한 호칭을 쓰자고 주장해 관철시켰던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사회운동, 특히 여성운동이란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 꽃길이 아닙니다. 낮고 어두운 곳, 소외되고 핍박 받고 상처받은 사람들 곁으로 가는 것입니다. 애당초 입신과 출세와 권력을 얻기 위해 여성운동을 시작한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그 초심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손바닥이 아무리 넓어도 하늘을 가릴 순 없을 테니까요.

1월 7일 앵커의 시선은 '격렬한 말장난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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