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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오세훈의 '조건부 출마선언'이 엉키게 한 '단일화 논의'

등록 2021.01.12 17:46

수정 2021.01.12 17:47

[취재후 Talk] 오세훈의 '조건부 출마선언'이 엉키게 한 '단일화 논의'

/ 연합뉴스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를 위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회동이 일단 미뤄졌습니다.

양측에 따르면 안 대표는 어젯밤 오 전 시장 측에 "회동을 연기하자"며 만남을 기약 없이 미뤘습니다. 오 전 시장 측이 '빨리 보자'고 했지만, 안 대표는 "먼저 잡아 놓은 일정이 있어 이번 주는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정치권에선 "김종인 위원장의 '오세훈 조건부 출마선언' 비판을 안 대표가 의식한 결과 같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회동이 아예 무산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 오세훈, 15년 전 '남원정'이 태워줬던 꽃가마 다시 찾나

'안철수가 입당 안하면 출마한다'는 오 전 시장의 '조건부 출마선언'은 사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입니다. 안 대표의 행위 여부에 서울시장 출마를 걸 정도로 오 시장 자신이 출마명분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란 해석이 당내에선 많았습니다. 그래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오 전 시장의 선언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기류가 강합니다.

오 전 시장은 왜 이런 수를 둔 걸까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2006년 4월, 오 전 시장이 처음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당시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2년 간 정계를 떠나있던 '오세훈 변호사'를 불러들인 건 이른바 '남원정'으로 불리던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었습니다.

수요모임 남경필 의원이 '외연확대'를 주장하며 분위기를 띄웠고, 원희룡 당시 최고위원은 오 변호사의 약점으로 꼽혔던 당내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의원들에게 '사발통문'까지 돌렸습니다.

결국 "정치와 거리를 둔 시간이 길었다"며 당내 경선 참여에 회의적이던 오 전 의원은 불과 2주 앞두고 출마를 선언합니다.

오 전 의원이 2년간 당비를 전혀 내지 않아 피선거권 자격 논란이 있었지만 당 지도부는 유야무야 넘어갔고, 오 전 의원 측을 위해 경선 날짜까지 이틀 미뤄줬죠.

당의 전폭적인 지원, 그러니까 '꽃가마'를 탄 덕분에 맹형규, 홍준표 등 경쟁자를 꺾고 경선에서 승리했고, 결국 서울시장으로까지 당선됐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 사이 당내 입지가 좁아진 오 전 시장은 그 때와 비슷한 그림을 그렸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사실 오 전 시장은 지난해 11월쯤부터 정치부 기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울시장에 다시 도전할 것인지 여부가 관심이었지만, 오 전 시장은 한결 같이 "출마 명분도 없고, 출마할 생각도 없다. 내 목표는 차기 대선"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즈음 당 지도부 주변에선 오 전 시장이 출마할 거란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오 전 시장이 많은 말을 했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꽃가마를 태워달라'는 뜻이더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안철수 대표가 대선으로 직행할 거란 관측이 나왔고, 민주당의 어떤 후보와의 대결에서도 오 전 시장이 승리할 수 있다는 말들이 도는 시점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의혹이 해소됐지만,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해서도 가족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오 전 시장은 이런 정치적 환경을 고려해 자신이 필승카드라는 걸 당 지도부 주변에 어필하고 있었던 겁니다.

오 전 시장이 이런 전략을 편 건, 두 가지 이유로 보입니다. 일단 시장을 사퇴했던 당사자기 때문에 출마 명분이 약하다는 점, 그리고 10년간의 정치 공백으로 경선을 치르는데 따른 부담이 컸을 거란 해석이 많습니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처럼…"안철수 입당은 생각하지마"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인간은 프레임에 갇힌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하는 순간 우리 뇌 안에서는 코끼리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 돼 더욱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오 전 시장이 '안철수 입당'을 조건부 출마 조건으로 내건 순간, 모든 정치적 시선이 '안철수 입당' 여부에 맞춰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오 전 시장을 겨냥해 "말도 안 되는 출마 선언을 한 것"이라며 비판하고, "(안철수 대표는)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잘라 말한 이유도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가 '안철수-오세훈'으로 빨려들어가는 상황에서 다시금 이슈 중심축을 '국민의힘'으로 옮겨오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 "경선, '미스터트롯' 아닌 '가요무대' 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금껏 여러 차례 '미스터트롯 방식 인물 발굴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바 있죠. 국민적 사랑을 받는 트로트 스타 '임영웅 씨'를 탄생시킨 예능프로 '미스터트롯' 형식을 빌려 공정하고 참신한 경선 과정을 통해 최종 단일화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이종구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스터트롯이 아니라 가요무대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참신한 인물을 발굴하는 '미스터트롯'이 아니라 흘러간 인물들이 다시 나오는 '가요무대'로 전락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전 의원은 오 전 시장을 겨냥해 "마치 국민의힘 대표 주자가 된 것처럼 '안 대표가 들어오면 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반성하며 이번에는 출마를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오 전 시장의 '조건부 출마 선언'은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이 콩가루 집안이냐. 안철수 후보를 거론하지 말라"고까지 버럭하는 일까지 불러왔습니다.

특히 단일화를 두고 물밑에서 내밀하게 진행돼야 하는 일들이 언론을 통해 중계되고, 스스로 단일화의 중심에 서려고 했던 일들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 전 시장이 야권의 서울시장 군소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지지율을 믿고 너무 큰 보폭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자충수를 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제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를, 오늘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난 안철수 대표마저 오 전 시장에는 "다음에 보자"고 하는 상황에서, 오세훈 전 시장은 차라리 '미스터트롯 1라운드 참가 신청서'부터 내는 게 어떨지요. / 홍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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