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이루다가 이루지 못한 것

등록 2021.01.12 21:50

수정 2021.01.12 21:56

"술 좀 그만 드세요. 일주일째 술집 결제하고 있잖아요"

몇 년 전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던 카드 광고입니다.

독신남 유해진이,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인공지능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야, 네가 사랑에 빠졌다고?" "나 약간 미쳤나봐"

"사랑에 빠진 거야?" "나 미친 거 같지?" (영화 '그녀')

광고가 패러디한 원작 영화가 바로,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가 나오는 공상 로맨스 '그녀'입니다.

외로운 대필작가 테오가, 대화하는 인공지능 챗봇을 삽니다.

"안녕, 나 왔어." "이름 있어?" "사만다"

사만다는 테오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며 계속 진화합니다.

하지만 둘의 가상 연인관계는 한계에 부딪치고, 사만다는 학습 진화능력을 더 키우기 위해 떠납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교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로맨틱하게 풀어낸 영화였지요.

국내 신생 벤처기업이 선보인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서비스 20일 만에 중단됐습니다.

장애인,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를 듣기 거북한 말로 차별 비하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루다'는 영화 속 사만다처럼, 사용자들과 대화하면서 어휘와 표현을 배우는 이른바 딥러닝을 합니다.

그런데 캐릭터가 여대생으로 설정된 탓인지, 성희롱이나 성적 발언으로 말을 거는 경우가 잦아 잘못 학습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5년 전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챗봇이 "유대인이 싫다" 같은 인종차별 언사를 하다 중단됐던 전철을 밟은 겁니다.

누군가 '이루다'가 중단되기 앞서 물어봤습니다. "너도 감정을 느끼느냐"고. 재치 있게 돌아온 대답은 "돌직구 질문이네요" 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번 일로만 보면 '이루다'의 죄라고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결국 책임은, 보다 풍성하고 정교한 언어 데이터를 입력해, 올바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다듬어야 할 사람에게 있습니다.

자칫하면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이번 이루다 논란이 남긴 교훈입니다.

언젠가는 사만다처럼 교감하고 공감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세상, 이 '비대면 시대'에 말동무가 돼주고, 외로움을 어루만지며 위로해주는, 그런 인간적 인공지능 말입니다.

1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이루다가 이루지 못한 것' 이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