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착한 정책의 배신

등록 2021.01.13 21:51

수정 2021.01.13 21:55

"심어주게 심어주게… 오종종 줄모를 심어주게…" "못줄 넘어갑니다!"

농촌에서 자라 장-노년이 된 분들에겐 귀에 익은 소리일 겁니다. 모를 반듯하게 심을 수 있도록 못줄잡이 두 사람이 논둑 양쪽에서 줄을 잡고, 다음 줄로 옮길 때 외치던 소리지요. 1988년 노태우 정부가 폐지한 준조세 목록에 못줄이 있었습니다. 농촌에 못줄 모기향 휴지통 시멘트 보내기, 택시기사 합동결혼식, 군경 위문, 하수도 설치까지 쉰 가지가 넘었습니다. 정부 예산을 써야 할 사업을 국민과 기업 성금으로 꾸렸던 겁니다. 정주영 회장은 "시류에 따라 편히 살려고 돈을 냈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지요. 온갖 관제 기부와 기업 팔 비틀기가 횡행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이낙연 대표가 내놓은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코로나로 실적이 좋은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를 받아 피해 업종을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양극화 해소, 사회-경제 통합 같은 명분이 일단 선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그런 국가적 과제를 민간과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정책이 과연 온당할까요.

지난해 자발적 기부를 전제로 전국민에게 지급했던 재난지원금만 봐도 그 허구성을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1호 기부에 나서고 세액공제까지 내걸어 '제2의 금 모으기' 캠페인을 벌였지요. 그렇게 2조원이 모이면 실업자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2퍼센트, 3천억원도 안 됐습니다. 얼마 전 벌인 착한 임대료 운동은 또 왜 실패했겠습니까. 최저임금 인상부터 주 52시간제, 임대차3법까지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정책들은 서민의 삶과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춘추전국시대 어느 재상이 강을 못 건너는 백성을 볼 때마다 자기 수레에 태워 건너게 했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은혜로우나 정치를 할 줄 모른다"고 꾸짖었지요. 몇 사람 도와줘서 되는 일이 아니라 다리를 놓으라는 얘기입니다.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때 박근혜 정부의 청년희망펀드 모금을 비난했던 말을 다시 들어보시지요.

"군사정권의 관제적 성금 모금과 유사한 형태로 변질되고 있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정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위선으로 포장돼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착한 정책의 배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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