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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도돌이표 신년회견

등록 2021.01.18 21:51

수정 2021.01.18 21:58

"저건 또 무슨 꽃이지?"

수채화처럼 맑고 고운 이야기,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녀가 산비탈에 핀 칡꽃을 가리킵니다. 

"꼭 등꽃 같네. 서울 우리 학교에 큰 등나무가 있었단다"

소녀는 칡꽃을 따려다 미끄러져 다칩니다. 그리고 소년이 따다 준 칡꽃은, 둘을 이어준 마지막 꽃이 되지요. 소녀가 말했듯 칡꽃과 등꽃은 닮은 데가 있습니다. 둘 다 콩과(科) 덩굴식물입니다.

하지만 덩굴이 감고 올라가는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우갈좌등, 칡덩굴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오르지요. 그런 칡과 등이 뒤엉키면 여간해선 풀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칡 갈 자, 등나무 등 자를 써서 갈등입니다.

지난 4년 대한민국은 이념과 정파로 얽히고 설킨 우갈좌등의 갈등에 꽁꽁 묶여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결자해지라는 말도 있듯,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갈등을 끊어내 집착과 속박에서 화합과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입니다.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은 국민 통합을 해친다"며 이낙연 대표가 띄웠던 사면론에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이 대표가 연말에 대통령을 만나 "국민 통합을 요청하면서 대통령 의중을 살폈다"던 얘기도 붕 떠버렸습니다. 결국은 지지층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애드벌룬'을 띄웠다가 서둘러 바람을 빼버린 형국이 됐습니다.

신년회견은 새해 새 희망보다 제자리걸음에 가까웠습니다. 주택공급을 거듭 말하면서도 부동산 규제는 유지하겠다고 했습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관점과 견해의 차이라고 했습니다. 보궐선거를 겨냥한 민주당헌 개정은 당원 뜻에 따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고 말한 데서는 허탈감마저 듭니다. 급기야 한미 군사훈련까지 북한과 협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코로나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지만 어느 대통령보다 현장방문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 역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미움은 모래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은 1년도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린 미움과 증오가 모래처럼 스러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또 한 해, 칡과 등나무에 칭칭 감겨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운명인 듯합니다.

1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도돌이표 신년회견'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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