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기업과 권력

등록 2021.01.19 21:51

수정 2021.01.19 21:57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일해재단의 호화 시설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 민간 연구소는 이동 무선국, 이중 철책, 감시카메라로 중무장했습니다. 경호원 마흔두 명은 특수부대 출신이고, 경비견들은 군견훈련소에서 들여왔습니다.

비단잉어 연못, 지하수영장과 사우나, 축구장도 갖췄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 후를 대비해 만든 재단에 기업들은 6백억원을 바쳤습니다.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편안하게 산다는 생각으로 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일해재단에 돈 낸 게 떳떳지 않다는데 현대가 파산하면 떳떳하겠는가. 권력 앞에서 만용을 부릴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업이 처한 '자의 반 타의 반' 현실을 이보다 솔직하게 표현한 말도 드물 겁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법정구속 됐습니다.

지난 4년 네 차례 재판 끝에 사실상 형이 확정됐습니다. 대법원이 뇌물액수를 증액 확정해 돌려보낸 사건에서 재판부는 2심보다 형량을 늘리지 않되 집행유예 대신 실형을 선택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건넨 금품이 반대급부를 얻기 위해 '요구에 편승한 적극적 뇌물' 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뇌물을 요구했고, 대통령이 요구하는 경우 거절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이 몇십 년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자의 반 타의 반'의 양면적 현실이 응축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은 정경유착의 음습한 그림자를 걷어내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마지막 시험대가 돼야 합니다. 기업의 투명하고 건전한 준법 경영은 도덕적 책임을 넘어, 세계시장을 헤쳐나가는 글로벌 표준이자 진정한 경쟁력입니다.

정치권도 기업이 권력 눈치를 살피지 않고 기업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각별히 몸가짐을 삼가야 합니다.

여당 대표가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오고,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구체적 기금 모금 방안까지 제시했는데, 우린 과거와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지요? 기업이 어떻게 받아 들일지부터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을 개혁과 규제, 단죄 대상으로 보는 시선도 이제는 거둬 들일 때가 됐습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이나 기업3법 역시 이 점에서 논란이 적지 않았지요.

기업 스스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권력 앞에 당당해 질 때 대한민국 경제가 바로 설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을 한다는 이유로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위태로운 곡예는 이제 그만 봤으면 합니다.

1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기업과 권력'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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