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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대통령의 취임사

등록 2021.01.21 21:51

수정 2021.01.21 21:54

춥고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9대 미국 대통령 윌리엄 해리슨은 8천5백 단어에 이르는 취임사를 한 시간 40분 동안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걸린 독감이 폐렴으로 번져 한 달 만에 세상을 떴습니다. 4년 뒤 제임스 포크의 취임사는 단 3분에 끝났습니다.

그는 공약들을 군더더기 없이 제시했고 모두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트루먼은 포크를 가장 좋아하는 선배로 꼽았지요. 대통령 취임 연설은 말한 사람보다 더 오래 남곤 합니다.

루스벨트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며 대공황을 이겨내자고 했습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지 말라"는 케네디 취임사는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명 취임사들의 울림이 큰 것은, 혼돈스러운 시대의 맥을 짚고 새 희망과 목표를 제시했기 때문일 겁니다.

"내 모든 영혼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을 하나로 묶고, 국민과 국가를 통합하는 데에…"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이라는 단어를 열한 번 썼습니다. "통합이 없으면 평화도 없다" "통합이 우리가 나아갈 길" 이라고 했습니다.

"기회 안정 자유 존엄 존경 영광 진실…"

반면 트럼프는 4년 전 취임사에서 살육 황폐 부패 슬픔을 말했습니다. 트럼프 시대가 깊이 남긴 분열의 상처는 워싱턴에 내려진 비상사태와 2만 군대를 동원한 봉쇄령이 단적으로 상징합니다.

하지만 바이든의 성당 미사에 여야가 함께하고, 국립묘지 참배에 전직 대통령들이 동행한 것은 부러운 풍경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통합과 화합을 말했습니다. 새해 들어서도 두 단어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신년회견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이 국민 통합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어제 개각을 친문 인사들로 채운 것도 통합, 쇄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우리에겐 두고두고 회자되는 취임사가 드뭅니다. 화려한 수식어가 총동원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취임사에는 우레 같은 박수가 따릅니다.

하지만 박수는 임기를 마치는 퇴임사에서 받는 것이 진짜일 겁니다. "축하는, 들어서는 자의 것이 아니라 물러서는 자의 것이 돼야 한다"는 김수환 추기경 말씀처럼 말입니다.

1월 21일 앵커의 시선은 '대통령의 취임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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