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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앵커가 고른 한마디] 권인숙의 참담함

등록 2021.01.31 19:45

수정 2021.01.31 19:50

"아침 일찍 간 조문에서 꺽꺽 소리를 감추기 힘든 눈물이 나왔다. 그분과 얽힌 삶의 역사 때문인 것도 같고 기막힌 아이러니에 절망해서인 것도 같다."

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박원순 전 시장의 빈소를 찾은 후에 쓴 글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권인숙 의원은 35년 전, '부천경찰서 성고문 피해자'입니다. '성'이라는 단어조차 남사스럽다며 난색을 표했던 그 시절, 스무살 갓 넘은 권 의원을 변호해준 이가 바로 박원순 전 시장이었습니다. 오랜 믿음이 무너지는 그 배신감 앞에 권 의원 본인도 기가 막혔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인연만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권인숙 (CBS '김현정의 뉴스쇼', 지난해 7월 15일)
"저는 변호사님이라고 하나요? 시장님과의 인연. 뭐 그런 것들이 작동을…이럴 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번주, 그녀는 또 다시 절절한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마치 남의 일처럼 '충격과 경악'이라며 비판한 것이,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했습니다.

평생을, 이름 석 자 앞에 '성고문 피해자'가 붙는 굴곡진 삶이었지만 여성인권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은 민주당의 비례대표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안희정 지사에 이어 오거돈 박원순 사태까지, 계속되는 성추문에도 피해자의 상처를 외면하는 당의 모습에 권 의원은 적지 않은 상처를 받은 듯했습니다.

남인순 / 당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피해 호소인이 겪었을…"

문정복 /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해 10월)
"사실 특정되지도 않은 얘기를 갖다가…"

이해찬 /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난해 7월)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나쁜 X 자식 같으니라고!"

박 전 시장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서울 전역에 내걸렸고, 일부 지지자들은. 피해자를 관노와 꽃뱀에 비유하면서 살인죄로 고발까지 했습니다. 무공천 당헌을 만들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서울 부산 시장 공천을 당연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2021년 신년기자회견)
"우리 박원순 시장이 왜 그런 또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선택에 대해서 존중하는…"

청와대에 걸려있다는 춘풍추상의 걸개가 다시 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사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2차 가해를 호소하며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절규합니다. '우리 박 시장'이라 말하는 대통령, 그리고 정의당을 몰아세우는 민주당의 핀잔. 단 한번이라도 피해자의 상처를 먼저 생각했다면 쉽게 입을 떼기 어려운 말들입니다.

오늘은 중국 북송의 정치인 사마광의 일화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동네에서 한 아이가 큰 물독에 빠졌는데, 어른들은 "사다리와 밧줄을 가져오라"며 야단법석만 떨었다고 합니다. 그때 일곱 살 사마광이 돌로 물독을 깨뜨려 아이를 살렸다고 하죠. 여기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파옹구우 (破甕救友). 아깝더라도 작은 것을 깨뜨려 큰 것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민주당이 외쳤던 여성인권이라는 대의가 내편 감싸기라는 소리(小利)에 묻혀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이 정치를 하는 이유가 권인숙 의원이 겪었던 피해를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건 아니었는지..

오늘, 앵커가 고른 한마디는 <권인숙의 참담함>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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