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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앵커가 고른 한마디] 상실의 시대, 그 끝자락

등록 2021.02.14 19:46

수정 2021.02.14 20:12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홀로였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네."

인도 전통악기 시타르 연주가 신비로운 비틀즈의 명곡,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1987년, 동명의 소설을 썼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는데, 이 소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승리에 도취돼 잠시 갈길을 잃었던 우리 젊은이들에게 큰 자극을 줬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다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더 어둡고 잔인하며, 현실적입니다.

코로나의 긴터널 속에서, 취업자는 한달 새 100만 명이나 줄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4년간 100조원이나 쓰고도 대한민국을 '알바천국'으로 만들었다고 야당은 주장합니다. 1 년 가까이 이어진 거리두기 조치에 자영업자들은, 겨우 숨만 붙어 헐떡이는 물고기 신세가 됐습니다.

허희영 / 카페대표연합회장 (2일)
"매달 3천만원이라는 빚을 내가면서 1년을 버텼습니다. 다음달이면 괜찮겠지, 다음달이면 괜찮겠지. 어제부터 카드연체자가 됐습니다."

부동산 폭등 탓에 아무리 월급을 모아도 집을 사긴 커녕 전세를 구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꿈꾸는 것조차 힘들어진 '희망 상실'의 시대..

참과 거짓의 최종 심판자인 사법부의 수장은 권력의 눈치를 살피다 거짓말이 탄로났는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바람에 그 참담함과 자괴감은 오롯이 우리 국민 몫이 됐습니다. 정의를 수호해야 할 전직 법무장관 가족까지 각종 비리로 감옥 신세를 지고 있는 '공정과 정의 상실'의 시대. 더 기막힌 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염치 상실' 이었습니다.

김도읍 / 국민의힘 의원
"(김명수 대법원장은) 물러날 의사가 없다는 듯이 답변을 했죠. "

조국 / 前 장관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반복되는 지도층의 문제들은 우리사회를 도덕불감증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3인 가족이 한달을 60만 원으로 살면서, 본회의를 빼먹고 해외로 가족여행을 갔다는 뉴스에도 우리는 둔감했습니다. 예전같으면 진작에 사퇴했을 후보자들을 마구 임명해도 언론은 조용했고, 우리는 또 그러려니 했습니다. 지독한 내로남불에 상식마저 상실된 시대... 거대 여당의 독주로 협치는 사라졌고, 야당은 존재감 없이 표류하는 정치의 상실까지..

희망, 정의, 공정, 상식,. 우리 사회를 든든하게 지키던 가치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겨울의 끝에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엉킨 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거지.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실마리는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니까."

하루키의 책 역시 그 끝자락엔 새로운 시작을 꿈꿉니다. 설 명절 연휴에도 가족과의 만남을 포기한 우리 국민의 희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서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틔웠습니다.

이 냉혹한 시대에도, 곧 따스한 봄날이 찾아올 거라 믿으며, 오늘 앵커가 고른 한마디는 <상실의 시대, 그 끝자락>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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