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권력의 숙명

등록 2021.02.17 21:52

수정 2021.02.17 21:56

"안녕하세요. 백악관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클린턴 대통령이 전화를 받느라 바쁩니다. 비서들이 모두 일손을 놓아버린 겁니다. 잔디를 깎고, 전용차를 닦고, 자판기에서 간식을 사먹으려다 발로 걷어찹니다. 클린턴이 임기 마지막 해 기자단 만찬에서 튼 영상 '마지막 날들' 입니다. 천덕꾸러기 말년 대통령의 일상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 폭소가 터졌지요.

오바마 대통령은 바이든 부통령과 '마지막 날들' 속편을 찍었습니다. 풀이 죽은 채, 퇴임 후 어떻게 살지 걱정합니다.

"다시 운전을 해야 하니 면허가 필요해요"

대통령제 국가에서 집권 말기에 권력이 새는 현상은 필연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퇴임을 1년 반 남기고 "내 임기는 다 끝났다.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했지요.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지지율도 괜찮은 편이고 내부 지휘체계도 일사불란한 듯 했습니다.

그런 청와대에서 거의 처음 듣는 파열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임명된 지 두 달도 안 된 신현수 민정수석이 거듭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은 만류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 수석이 검찰 인사 중재와 조율 과정에서 배제된 채, 대통령이 박범계 장관의 인사안을 받아들이자 사의를 밝혔다는 겁니다.

신 수석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입니다. 대통령과도 가깝고 윤석열 총장과도 말이 통하는 사이로 알려졌습니다. 마침 대통령이 윤 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공언하면서, 청와대가 윤 총장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요. 그러던 차에 조국 라인의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사표를 냈다가 거뒀고, 뒤이어 신 수석까지 사의를 밝혔다는 소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청와대는 갈등은 없다고 했습니다만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권력핵심부 요직 중에 요직 민정수석이 부임 두 달 만에 사표를 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심상치 않은 일입니다. 기존 청와대 진용을 돌아보면 신 수석 기용은 분명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 그가 청와대에 들어오자 마자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청와대는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신 수석은 여전히 사의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천년 전 한비자는 군주를 에워싸고 가로막는 다섯 가지 재앙 중에 으뜸으로 인의 장막을 꼽았습니다. "신하들이 군주의 눈과 귀를 막는 것" 이라고 말이지요.

2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권력의 숙명'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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