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록 2021.03.03 21:51

수정 2021.03.03 21:58

형제 듀엣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입니다. 김광섭의 명시 '저녁에'에 곡을 붙였지요.

외로움과 그리움이 응축된 시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한국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추상 걸작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뉴욕에서 외롭게 작업하던 김환기가 30년 지기 김광섭의 시를 읽고 탄생시킨 대작이지요.

그는 저녁 하늘에 빛나는 별같이 푸른 점을,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일이 그려 하나의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친구의 시는, 그를 추상화 시대로 인도한 '별' 이었습니다.  '결정적 순간' '운명적 시간'을 뜻하는 이 독일어는 별 '슈테른'과 시간 '슈텐데'를 합친 말입니다.

그래서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이 "윤석열 총장에게 '별의 순간'이 보일 것"이라고 했던 겁니다. 대권 도전의 결정적 순간이 온다는 얘기였습니다.

윤 총장이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중수청 설치는 "힘 있는 세력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민주주의 퇴보이자 헌법정신 파괴" 라고 했습니다.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백번이라도 직을 걸겠다"고 배수진을 쳤습니다. 그런 윤 총장을 가리켜 김 위원장은 "3월이 결정적 순간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윤 총장은 '별의 순간'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치에 소질도 없고, 할 의사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윤 총장에게 별을 띄운 건 집권세력이었습니다. 당정이 윤석열 찍어내기에 몰두할수록 그의 존재감은 저절로 커졌습니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공언하면서 한동안 소강상태였지만, 검찰 인사에서 새로 온 민정수석이 패싱 당하면서 다시 불씨가 커졌습니다. 그러더니 여권이 중수청을 밀어붙이면서 온 산으로 불길이 옮겨붙은 셈이 됐습니다.

공직자로서 지금 윤 총장의 행보가 적절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인과 관계가 있고, 특히 정치의 세계에서는 본인이 원치 않아도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윤 총장이 목소리를 높이자 여권에서 중수청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이유 역시 다 그런 것이겠지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은, 이제 어디서 어떤 윤석열이 되어 집권세력과 다시 만나게 될까요. '정의로운 검사' 에서 '우리 총장님'을 거쳐 '식물 총장'까지, 파란만장한 행로의 끝은 어디일까요. 정치판의 뒤틀린 현실, 권력의 아이러니를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게 목격하는 시절입니다.

3월 3일 앵커의 시선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