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거덜들이 거덜 내는 나라

등록 2021.03.04 21:49

수정 2021.03.04 21:53

지금은 재개발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종로 뒷골목 피맛골은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입니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높은 사람 행차를 피해 다녔던 길이지요. 수행하는 하인들이 "게 물렀거라" 하며 위세와 행패를 부리는 게 싫었던 겁니다.

"날랠 용 자를 떡 붙이고, 충충충충 거덜거리고 나간다…"

춘향가 관원 행차에 나오는 말 '거덜거린다'는 '거들먹거린다'와 같습니다. 둘 다, 왕실의 말을 돌보던 종7품 잡직인 거덜이, 행차 앞에서 몸을 흔들며 우쭐거린 데서 나왔습니다. 또 그렇게 흔들거리는 행태에서 나온 말이 '거덜 나다'입니다. '재산 다 들어먹고 집안이 결딴난다'는 뜻이지요. 예로부터 간은 정신을, 쓸개는 줏대를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간의 기운이 너무 왕성해 겁이 없는 것을 '간이 부었다'고 하고, 허튼짓 하는 것을 '쓸개 빠졌다'고 합니다. 권력에 취해 자신의 본분을 잃은 거덜들이 그랬습니다.

토지주택공사 LH 직원들의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은 국민 가슴에 분노의 불을 질렀습니다. 부동산 소유를 죄악처럼 다루며 온갖 규제와 세금을 때리더니 정작 주택정책 실행기관에서는 끼리끼리 땅 사들이느라 바빴던 겁니다. 보상액을 늘리려고 멀쩡한 논을 갈아엎어 묘목을 심어놓은 데 이르러선 국민의 거덜, 공복이 아니라 공공의 도둑, 공적(公賊)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땅을 사들일 때 사장이었던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버젓이 이런 당부를 했습니다.

"(산하) 기관장 여러분께서도 특히나 경각심을 가지시고 청렴한 조직문화 정착을 위해…"

오늘 다시 사과하긴 했습니다만 자신이 내세운 공공주도 개발정책의 신뢰가 거덜 날 지경인데도 마치 남의 말 하듯 말이지요. 장관이 이러니 LH 직원 게시판에 "우리라고 왜 투자하면 안되느냐"는 글이 올라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2004년부터 가덕도 신공항을 주장해온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일가가 신공항 예정지 일대에 수만 평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는 성추행으로 보궐선거를 초래한 장본인이고, 민주당은 보궐선거 핵심 공약으로 신공항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역설적이게도 책임자와 그 가족들이 최대 수혜자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의와 공정을 가장 중요한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제 곧 20조 원 가까운 재난지원금이 또 풀립니다. 나랏빚은 기하급수로 불어나고 견디다 못한 여당은 결국 세금 올리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가요, 거덜들인가요.

3월 4일 앵커의 시선은 '거덜들이 거덜 내는 나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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