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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앵커가 고른 한마디] 매화가 피지 않는 계절

등록 2021.03.07 19:45

수정 2021.03.07 20:21

전남 순천 선암사에는 600년이 넘은 늙은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렇게 꽃을 피웠습니다.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장길도 이렇게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혹한을 뚫고 피어서는 맑은 향기까지 뿜어내는 매화는, 곧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합니다. 천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퇴계 이황 옆에 이렇게 매화가 그려진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지난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시작으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현 여권은 매화처럼 지조 있는 인물로 평가해왔습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그를 각별히 아끼면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또 검찰총장으로 파격 발탁했습니다.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 (2013년)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임명장 수여식 (2019년 7월)
"우리 윤 총장님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정말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비록 사람에 충성하진 않는다고 했지만, 어려운 처지였던 자신을 알아봐 준 문 대통령에 대해 각별한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윤 전 총장이 조국 전 장관의 임명에 반대한 것, 그리고 권력 주변의 비리에 더 엄정했던 것도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하지요.

계속되는 측근들의 좌천, 그리고 가족에 대한 수사 압박, 그리고 이어진 지휘권 박탈, 여기에 헌정 사상 초유의 징계까지 스스로를 식물총장이라 부를 정도로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가 자리를 지킨 것 역시 대통령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거취 문제는 아직 임면권자께서 말씀이 없으시기 때문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2020년 12월)
"대한민국의 공직자로서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하지만 여권의 칼날이 검찰 조직을 향하고, 문 대통령도 그걸 용인하면서 윤 전 총장은 결국 스스로 사퇴해야 하는 외길로 몰렸습니다. 사퇴의 변을 보면 국가의 반부패대응역량을 망가뜨리려는 여권의 시도를 막아내는 길은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는 길뿐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렇다면 왜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게 아끼던 윤 전 총장을 막다른 길로 내몰았을까. 왜 그렇게도 문제가 많다는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했고, 임기 내내 윤석열 찍어내기에만 열을 올렸던 추미애 전 장관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을까. 또 자신의 뜻과 달리 그 수사권마저 빼앗으려는 친 조국 세력의 움직임을 왜 수수방관 하고 있는 걸까.

이해하기 힘든 일련의 사건들에 어떤 곡절이 있는 지는 추후 꼭 밝혀져야 겠지만, 그 사이 대통령 스스로가 강조했던 공정과 정의의 가치는 부메랑이 돼서 이제 이 정권을 겨누고 있습니다.

윤석열 前 검찰총장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습니다."

문 대통령의 양산집에도 매화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과거 "설중매인 매화는 눈이 와도 꽃잎을 오므리지 않는다"며 매화의 절개를 높이 샀습니다.

그 매화의 절개가 지금의 문 대통령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 오늘 앵커가 고른 한마디는 <매화가 피지 않는 계절>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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