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땅 따먹는 세상

등록 2021.03.19 21:51

수정 2021.03.19 21:56

나팔소리, 대포소리와 함께 말과 마차들이 힘껏 달려나갑니다. 깃발만 먼저 꽂으면 그 땅을 얻는, 미국 서부개척시대 땅 따먹기 경주입니다.

"이 땅은 내 거야. 이건 내 운명이야"

1854년 피어스 미국 대통령이 지금의 워싱턴주 땅을 아메리카 원주민들로부터 수용하려고 협상단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추장 시애틀이 협상대표 머리에 한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땅과 하늘을 사고팔 수 있다는 말인가.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팔라는 말인가"

그의 영롱한 연설은, 땅에 대한 탐욕과 자연파괴를 꾸짖는 교훈으로 전해오고, 그의 이름은 아름다운 도시 시애틀로 남았습니다.

대지가 새 생명들을 품는 이 봄에 우리는 벌써 보름 넘도록, 땅에 얽힌 분노와 환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땅을 쪼개고 밭을 갈아엎고 묘목을 심는 온갖 반칙과 협잡이 벌어졌는데도, 응징은커녕 뭐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게 없습니다.

주무 장관이라는 사람은 온 산에 분노의 불을 지르더니 여전히 주택정책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의혹의 진원지에서는 "열심히 차명 투기하며 정년까지 꿀 빨며 다니겠다"고 약을 올립니다.

높은 분들은 말만 거창하고 엄중할 뿐, 정부 합동조사 결과는 맹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경찰은 또 오늘에야 투기 혐의자를 처음으로 소환했습니다. 이 정부 들어 벌어진 지금 이 사태도 제대로 감당 못하면서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겠다니, 듣는 사람이 어리둥절합니다.

병고에 시달리는 재미교포 노인의 '고국에 묻히고 싶다'는 사연이 교포신문에 크게 실렸습니다. 미국에 오래 산 의사 시인이 기사를 보며 생각합니다.

"수십 년 노동으로 사놓은 그 집 팔아도, 고국의 땅을 몇 평이나 살까. 몸이나 눕힐까"

시인은 '나라의 마음을 잿빛으로 덮어버린 고국의 하늘'을 떠올립니다.

봄은 축복이지만 현실은 환멸입니다. 열병처럼 아지랑이 일고, 꽃은 몸살하고, 먼지에 가린 해는 황달을 앓듯 노랗습니다. 내일 봄비 내리면 목마른 땅을 그나마 적셔주고 식혀줄까요. 이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줄까요.

3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땅 따먹는 세상'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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