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사람의 향기

등록 2021.03.24 21:52

수정 2021.03.24 22:29

앞을 못 보는 퇴역 장교 알 파치노가 낯선 여인과 탱고를 추는 명장면이지요. 그는 시각 대신 후각으로, 함께 춤출 여인을 찾아냅니다.

"좋은 비누 향기가 저쪽에서 나는 것 같은데…"

영화는 말합니다. 참다운 삶의 가치란 돈도 권력도 아닌, 그 사람의 인간적 향기라고 말입니다. 문호 찰스 디킨스는 접착풀 냄새를 평생 싫어했습니다. 어릴 적, 파산한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병 공장에서 라벨을 붙이던 고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었지요.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홍차에 적신 과자 냄새'로부터 4천쪽 넘는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후각은 오감 중에 가장 예민하고 오래 남습니다. "부패는 악취가 아니라 향기를 풍기며 온다"는 어느 퇴임 법관의 글도 생각납니다. "이성을 제압하고 도덕을 무력화시키는 돈과 쾌락의 달콤한 향기"를 경계하라는 당부였지요.

"향기가 좋다는 건,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는 뜻" 이라는 역설적 금언과도 통합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연이틀 글을 올려 '박원순의 향기'를 말했습니다. 박 전 시장이 "내가 아는 가장 청렴한 공직자였다"며 서울 곳곳에서 그의 향기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딱딱한 행정에 사람의 온기와 숨결을 채우고"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을 키웠던" 그를 '선거 다시 치르는 시점에 성찰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한 글임을 스스로 밝힌 겁니다. 그래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메시지라는 분석이 잇달지만, 정작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도움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그런 일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의 상처를 건드리는 발언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임 전 실장은 박 전 시장에 대한 찬사를 오늘 또 올렸습니다. '사람의 온기와 숨결' '사람 냄새'같이 그의 글에는 유난히 '사람'이라는 단어가 많습니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자 치열했던 박원순 이름 석 자를 용산공원 의자에 새겨 넣자"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인간 박원순의 숨결과 냄새를 어떻게 떠올릴지 궁금합니다.

그의 박원순 찬사가 결과적으로 찬사 맞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으로 의아하고 이상한 일입니다.

3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사람의 향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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