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시가 내게로 왔다

등록 2021.03.26 21:47

수정 2021.03.26 21:54

"어떻게 시인이 되지요?" (영화 '일 포스티노')

"시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불쑥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나를 불렀습니다."

네루다는, 갑자기 세상 만물이 달리 보이면 그것이 시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찮은 양말 한 켤레에서 일흔한 줄이나 되는 시를 풀어냈습니다. 토마토 옷 양파 수탉 다리미 우표책에게도 시를 바쳤습니다. 그의 시에는 일상의 아름다움과 놀라움이 가득합니다.

그렇듯 시란, 모든 것에 숨결과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 일입니다. 늘 그곳에 있던 것이 어느 날 새롭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렇게 눈과 귀를 밝혀주고, 가슴과 머리를 씻어줍니다. 때로 사람이 밉고, 사는 게 힘들 때 따스한 위로가 돼줍니다.

지난해 한국인 네댓 명 중 한 명이"외롭다"고 했습니다. "내 삶에 만족한다"는 이는 다섯 중 셋에 그쳤습니다. 답답하고 우울한 일상이 우리 삶을 짓누른 지도 일년이 넘었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걷히지 않을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처럼 시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날마다 시 한 편을 배달해주는 어느 출판사 앱이 독자 12만명을 넘겼습니다.

디지털세대 2030 회원이 절반을 넘는 것도 뜻밖입니다. 시가 지닌 아날로그 감성을 생각하면 놀라운 호응입니다. 그날그날 시절과 느낌에 맞춘 감각적 시가, 지친 일상을 어루만져주는 덕분이겠지요. 다른 시와 독서 앱, 이메일 시 배달도 꾸준히 독자와 소통하고 있고, 일간신문에 실리는 아침 시 한 편도 한 모금 맑은 샘물이 돼줍니다.

가난한 시인이 생각합니다. "시 한 편에 몇 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몇 천원이면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만큼 사람들 가슴을 덥혀줄 수 있을까."

시는 값이 쌀망정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풍요로운 양식입니다. 시를 읽으며 마음이 푸근해지고, 작은 소용돌이가 일고, 삶과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시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연민으로 '열심히 살아라'고 토닥여주는 시와 시인들이 있어, 그나마 이 시대가 숨쉴만합니다.

3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시가 내게로 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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