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위선 전성시대

등록 2021.03.29 21:50

수정 2021.03.29 21:54

하필 벽에 걸린 소화기에 불이 났습니다.

'우리는 달라야 한다'고 찍힌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 그러면서 정작 모두가 똑같은 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승용차를 들이받은 버스에 하필 이런 글이 큼직하게 쓰여 있습니다. '안전은 당신과 함께 시작됩니다.'

시인은 '하필'이라는 말을 비꼽니다. "하필이면 왜 그날, 하필이면 왜 당신이… 하필은 이유를 모르고, 하필은 때로 전능하기도 하다. 우연은 급히 우연을 조립한다."

'하필' '우연'과 비슷한 말이 '공교롭다'입니다. 하지만 '공교'는 '만드는 솜씨가 빼어나고 교묘하다'는 뜻입니다. 그건 결코 우연히 되는 일이 아니지요. 그렇듯 '공교롭다'는 말은 '우연찮다'처럼 우연과 필연을 동전의 양면같이 품고 있습니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차법 시행 이틀 전, 자신이 소유한 강남 아파트 전셋값을 14퍼센트 올렸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틀 뒤면 5퍼센트밖에 못 올리게 될 하필 그때,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집 주인이 전셋값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돈이 필요했고, 한 달 뒤 재계약 기한을 앞두고 자기도 올렸다고 했습니다.

공교로운 우연들이 합쳐져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 계약은 불법도 아니었고 수사를 받을 처지는 더 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즉시 그를 경질했을까요? 청와대가 이렇게 신속하게 나선 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그는 청와대에서 주택정책을 기획하고 조율하는 콘트롤 타워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은 임대차법의 그물을 공교롭고 우연찮게도 빠져나간 뒤 서민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세난으로)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자신은 강남 살면서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가 없다"고 했던 전임 정책실장보다 훨씬 악성입니다.

대통령이 그를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하는 자리에서 그의 가방을 살펴보는 장면입니다.  인사청문회 때부터 들고 다니면서 소탈하고 욕심 없는 삶의 상징처럼 부각됐지요. 그런데 그는 임대차법 시행 직전 전셋값을 올리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혹시 겸연쩍거나 께름칙하지는 않았을까요.

옛말에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은 스스로 겸연쩍어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훈계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 두명이어야 말이지요.

3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위선 전성시대'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