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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누가 누구에게 중독됐는가

등록 2021.03.31 21:50

수정 2021.03.31 21:56

"엄마는 다 알아. 엄마 말을 들어. 너무 무서운 바깥세상…"

오랜 세월 갇혀 살던 공주 라푼젤이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다고하자 계모가 펄쩍뜁니다.

"남의 말에 속고 어리버리하니까 정신 못 차릴게 뻔해. 넌 이 탑을 떠날 수 없어. 영원히!"

애니메이션 '라푼젤'은, 고전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한 심리용어 '가스라이팅'의 현대판 버전입니다. 남녀관계나 상하관계, 유사종교에서, 불안과 공포로 상대방 심리를 조종해 지배하는 행태를 가리키지요.

가스라이팅은 우리 정부의 대북 저자세를 지적하는 비유로도 등장했습니다. "북한은 한국이 좋은 관계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기에 문재인 정부를 가스라이팅하고 있다"는 겁니다.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가해자를 감싸고 변명하고 간단한 결정도 하기 힘든 증상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외교부 차관급 고위 공직자인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한미관계를 가스라이팅으로 규정한 책을 냈습니다. "부모가 엄한 자녀, 사이비종교 무리처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합리적 자율적 의사결정을 못하는 상태" 라는 겁니다.

그는 "예전 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미국에 대한 충성 서약"이며 "미군 철수는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해방자라기보다 점령군"이었으며 "한국은 한미동맹에 중독됐다"고 했습니다. 문정인 전 대통령 특보는 책 추천사에서 "보기 드문 역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김 원장이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어 책을 발표한 어제, 북한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라고 불렀습니다.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가 '미국의 강도 같은 주장을 신통하게 빼닮았다'는 겁니다. 언뜻 김 원장의 논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김여정은 2주 전엔 한미훈련을 비난하며 문재인 정부를 "태생적 바보"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반박은커녕 통일부가 "한미훈련이 군사 긴장을 조성해선 안 된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렇다면 김 원장에게 묻겠습니다. "어떤 게 진짜 가스라이팅이냐"고.

그는 지난 두 차례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한 뒤, 국정기획자문위원을 거쳐, 외교관 교육기관이자 외교안보정책 연구기관의 수장에 기용됐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께 묻고 싶습니다. "그의 주장과 신념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말입니다.

3월 31일 앵커의 시선은 '누가 누구에게 중독됐는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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