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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공수처는 왜 만들었나

등록 2021.04.02 21:49

수정 2021.04.02 21:55

은행강도들이 경찰 추격을 받으며 도심을 질주합니다. 일당은 아슬아슬한 곡예운전 끝에 한적한 주차건물로 들어가 다른 차로 바꿔 타고 경찰을 따돌립니다. 냉혹한 암살범 자칼이 차에 특수한 칠을 입히고 고압세척기로 벗겨내는 실험을 해봅니다. 그는 다른 악당들의 추격을 받자 세차장에서 칠을 씻어내고는 유유히 사라집니다.

차를 바꾸고 숨기는 수법은, 범죄영화나 현실의 잡범들만 쓰는 게 아닙니다. 지난해 검찰 출석을 앞둔 김홍걸 의원이 누군가와 나누는 문자가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출석할 때 '기자들이 고급 승용차를 주시할 테니까' '다른 차를 타고' '보도된 출석 시간을 피하자'며 따돌리기 작전을 의논한 겁니다. 하지만 저희가 어제 단독 보도해드린 차 바꿔 타기 현장에 비하면 그 정도는 순진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요일 오후 과천 어느 골목에 검정 대형 세단이 멈춥니다. 미리 와있던 차에서 남자가 내리더니 재빨리 옮겨 탑니다. 남자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고 세단은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찹니다.

이 차는 한 시간 20분 뒤에 돌아왔고, 이 지검장은 주변을 살피며 원래 타고 왔던 차에 오릅니다. 영화 같은 비밀 접선과 환승은 이 지검장이 김 처장의 조사를 받으러 공수처를 오가며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 처장은, 여당이 중립적이고 공명정대한 고위공직자 수사기관이라며 출범시킨 공수처의 초대 수장입니다. 이 지검장은 불법 출국금지 사건 관련 피의자입니다. 파격적이고 은밀한 피의자 에스코트에 대해 이 지검장은 "공수처에서 시킨대로 했다"고 했습니다.

과천청사에 들어가는 외부인은 신분과 방문 목적을 밝혀야 합니다. 검찰 간부도 예외가 아니지만 공수처 관용차는 출입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김 처장은 이 지검장에 대한 조서도 없이 일시, 장소, 면담자만 기록한 맹탕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검찰 조사 때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황제 소환' '황제 조사'는 저리 가라입니다.

이 지검장은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물망에 올라 있고, 정권 관련 수사를 틀어막아 왔다는 의심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저런 사정이 김 처장의 처신에 영향을 미친 것은 설마 아닐거라 믿습니다.

공수처장이 직접 나선, 공수처 첫 작품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래저래 참 보기 민망합니다.

4월 2일 앵커의 시선은 '공수처는 왜 만들었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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