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우리 곁의 악마

등록 2021.04.05 21:50

수정 2021.04.05 22:11

일본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는 비틀스의 존 레넌과 우연히 마주친 뒤 2년을 쫓아다녔습니다. 전화걸고, 집 문을 두드리고, 공연 뒤풀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레넌 부부가 탄 차에까지 뛰어들기도 했다지요. 그야말로 극렬 스토커였던 겁니다.

하지만 결국 레넌은 요코와 재혼했고, 동료 폴 매카트니가, 버림받은 레넌의 아들 줄리언을 다독여준 노래가 명곡 '헤이 주드'입니다. 그런데 레넌은 그를 숭배했던 스토커에게 살해됐습니다. 스토킹으로 삶의 행로가 바뀌었고, 스토킹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스토킹은 스릴러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합니다. 라디오 DJ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매일 밤 같은 곡을 신청하는 스토커에게 벼랑 끝까지 몰립니다.

"사랑하니까 그런 거예요. 이해 못하겠어요?"

마이크 더글라스도 하룻밤 풋사랑을 나눴다가 가정이 망가집니다. 로버트 드 니로는 프로야구 스타를 광적으로 쫒아다니고, 짐 캐리는 케이블TV 고객을 끔찍하게 괴롭힙니다.

어제 구속된 세 모녀 살해범은 스토킹 범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신상이 공개된 그는 인터넷 게임으로 알게 된 피해자를 딱 한번 만나고는 석 달 전 스토킹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고는 피해자 집에서 세 모녀를 차례로 살해한 뒤 사흘을 머물렀습니다. 엽기적 집착과 광기에 소름이 돋습니다.

우리는 스토킹을 8년 전에야 경범죄로 분류해 벌금을 물려왔습니다. 개인 사이 애정문제로 여기는 인식이 그만큼 뿌리 깊었던 겁니다. 징역형을 포함한 스토킹처벌법이 지난달 통과돼 9월 시행을 앞둔시점에 터진 사건이어서, 시대에 뒤처진 늑장 입법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나마 새 법도 여러모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밝혀야 처벌하는 것부터 허점으로 꼽힙니다. 협박이나 회유, 두려움 때문에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접근과 통화 금지 같은 응급조치를 어겨도 과태료에 그치는 것 역시 느슨합니다.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명령을 신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따릅니다.

무엇보다 스토킹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가해자는 물론 우리 사회와 수사기관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벽입니다. 스토킹은 단순한 괴롭힘도, 끈질긴 구애도 아니고 순애보는 더더욱 아닙니다. 스토킹은 편견을 먹고 자라는 '살인의 전조'일 뿐입니다.

4월 5일 앵커의 시선은 '우리 곁의 악마'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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