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여당 안에 흰 코끼리

등록 2021.04.15 21:50

수정 2021.04.15 21:54

절 금강문에 문수동자와 함께 모시는 보현동자상입니다. 자비와 덕을 상징하는 흰코끼리를 타고 있습니다. 마야부인이 흰코끼리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를 낳았다는 신성한 동물이지요.

조선 태종에게 일본 왕이 흰코끼리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돌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임금이 맡긴 귀한 짐승이어서 일도 못 시키는데, 쌀과 콩은 엄청나게 먹어 치웠습니다. 구경 간 관리가, 못생겼다고 침을 뱉었다가 밟혀 죽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태종은 코끼리를 섬으로 귀양 보냈지만 먹이를 감당 못해 반년 만에 불러올렸고, 삼도 관찰사가 번갈아 키워야 했습니다.

동남아 불교국가에서도 흰코끼리는 애물단지로 통합니다. 쓸모가 없어도 극진히 모셔야 하고, 말썽을 피워도 처분하기가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입니다.

재보선 참패 후 "조국 사태를 반성한다"며 소신 발언을 했던 민주당 초선 의원이 사과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께서 고초를 겪으실 때 그 짐을 저희가 떠안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반성문을 쓴 겁니다. 초선 의원들은 권리당원과 열성 지지자로부터 '초선 5적' '초선족'으로 불리며 원색적 비난을 받았습니다. "친문과 비문으로 나누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반성문까지 나오면서, 쉰네 명이 냈던 목소리는 조용히 사그라들었습니다.

사실 여당 초선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운 쇄신 주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조국 옹호와 검찰 수사권 박탈에 격렬하게 앞장선 장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소수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젊은 의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내 쓴소리는 경청할만합니다.

하지만 민주당 주류에선 아무 반향이 없습니다. 당권 경쟁에 나선 면면들에서도, 책임지는 모습과 변화 의지를 지닌 새 얼굴이 안 보입니다. 들려오는 것은 강성 지지자들의 고함소리뿐입니다.

권리당원들의 전당대회 투표 반영률도 40퍼센트로 압도적입니다. 대통령은 열성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마당에 누가 나서서 그들을 말릴 수 있겠습니까. 열성 지지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흰코끼리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다시 살아나려면 철저히 잿더미가 되라고 합니다.

"잿더미가 되지 않고 어찌 숯이 되겠느냐. 숯이 되지 않고 어찌 불씨가 되겠느냐"

하기야 애초부터 거대 여당에 그런 처절함 자체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여당 안에 흰 코끼리'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