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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숨가빴던 '미라클 작전'…법무부 "장관님 인형 퍼포먼스 찍어달라"

등록 2021.08.27 16:17

수정 2021.08.27 16:58

[취재후 Talk] 숨가빴던 '미라클 작전'…법무부 '장관님 인형 퍼포먼스 찍어달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선물한 인형 /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님 인형 퍼포먼스 찍어달라”

“작전명 미라클(기적)”

어제(26일) 오후 4시 28분 인천국제공항. 아프가니스탄인 377명이 도착했습니다.

특별 기여자들입니다.

같은 시간 공항 CIQ(출입국 관리소) 42~43번 게이트 사이.

기자단과 법무부 직원 사이에서 때아닌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법무부 직원이 갑자기 촬영 기자들에게 “위치를 옮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요청 요지는 박범계 장관의 촬영 협조.

법무부 직원은 “박범계 장관님이 입구 심사대 앞에서 이민자들에게 축하 메시지와 인형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하니 이동해서 취재해야 된다”고 했고, 기자단은 곤란하다는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기자단은 “당장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나오는 모습이 더 중요하니 지금 이동하기는 어렵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법무부 직원들은 “여기(CIQ)에 들어와서 취재할 수 있게 우리가 허가해 줬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촬영해달라. 우리가 허가 취소하면 나가야 한다.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이면 허가를 안 해 줄 수도 있다”고 기자단에게 말했습니다.

법무부가 CIQ에 들어와서 촬영을 허가해 줬으니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 위주로 취재하라는 겁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외교부 직원마저 법무부 직원을 향해 “그만하라”라고 항의하는 촌극도 있었습니다.

갈등을 빚다가 결국 한 언론사 촬영기자가 장소를 옮겨 박범계 장관을 찍기로 정리가 됐고,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들어올 때 박범계 장관의 격려사는 법무부 직원의 요구대로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박범계 장관은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입니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중략) 우리 법무부 직원들이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많이 도울 겁니다. 제가 저기 입국심사하는 데까지 안내해 드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취재후 Talk] 숨가빴던 '미라클 작전'…법무부 '장관님 인형 퍼포먼스 찍어달라'
강성국 법무부 차관 브리핑 / 연합뉴스


▲강성국 법무부 차관 우천 브리핑…뒤에는 무릎 꿇은 부하직원


오늘(27일) 오후 12시 40분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앞.

작전은 강성국 법무부 차관의 우천 브리핑으로 마무리됩니다.

PCR 검사가 끝난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오늘 진천 개발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강 차관은 비가 오는 와중에도 열심히 마이크 앞에서 정부의 ‘인도적 조치’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취재기자들 눈을 의심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브리핑을 하는 강 차관 뒤로 법무부 직원이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줬습니다.

한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법무부가 평소에 ‘인권, 인권’하면서, 이를 자랑하는 브리핑까지 한 건데, 정작 부하직원의 인권은 어딨느냐”라고 되물었습니다.

무릎까지 꿇은 과잉 의전은 나중에 다른 법무부 직원이 서서 우산을 받쳐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직원이 처음에는 강 차관의 얼굴이 가려져 무릎을 살짝 구부린 스쿼트 자세로 서있었다. 그러다 브리핑이 더 길어져 나중에는 한쪽 무릎이 땅에 닿았고, 결국에는 저 자세가 됐다. 촬영 기자들이 화면에 얼굴을 가린다고 자세를 계속 낮춰라고 말을 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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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법무부 장관 출근길 / 연합뉴스


▲“서초동에 있는 기자들을 가급적 과천으로 불러달라”

복수의 법조계 인사들에 따르면,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정책 홍보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간부 회의에서 “서초동에 있는 기자들을 과천으로 부를 방법을 고민해라. 필요하면 과천에 있는 기자실을 새로 넓혀줄 수도 있다”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 “윤석열 전 총장 징계 국면에서 법무부 직원들이 기자단과 접촉면이 적다 보니 여론전에서 밀렸다. 앞으로 필요하면 언제든 기자단들을 만나라”라는 주문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법조팀 기자들 대부분은 보통 서초동에 상주합니다.

중앙지검, 서울고검, 대검찰청은 물론 최대 법원인 중앙지법, 서울고법, 대법원이 모두 서초동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들의 대부분도 서초동에 있습니다.

실제로 박 장관은 임명 이후 출근길마다 기자들과 계속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법조계 현안에 대해서 가감 없이 계속 ‘출근길 브리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과천에 상주하는 기자들도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임 추미애 장관과 달리 기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분명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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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유상범 의원 / 연합뉴스


▲“자료 제공 요구를 이렇게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법무부는 처음”

하지만, 그 법무부의 소통 기조가 일방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 기자는 유상범(국민의 힘) 의원실을 통해서 사면 관련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 수산업자’ 김 모 씨에 대한 자료입니다.

김 씨가 2017년 4월 교도소에서 규율 위반까지 저질렀음에도 어떻게 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2주 가까이 있다가 270자 정도의 짧은 입장문만 보내왔습니다.

“위원님께서 요구하신 ‘2017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 피고인 김○○에 대해 통보한 규율 위반행위, 당시 주고받은 공문 사본 일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해당 수용자에 대하여 과거 교정기관 수용 중 규율 위반 행위를 법원에 통보한 사실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규율 위반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 및 해당 공문은 개인에 관한 사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이를 공개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제출하기 어려움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법무부 답변)

쉽게 말해 못 준다는 이야깁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법무부가 불리한 자료는 2주 정도 검토 중이라고 하다가 결국에는 줄 수 없다고 답변을 보내는 패턴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지적합니다.

다른 법사위 의원실 관계자들도 볼멘소리를 합니다.

“법무부가 최근 소통 의지가 전혀 없는 말년 직원 한 분만 국회에 보내놨다.”

“의원실 자료 제공 요구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정부 부처는 처음 봤다.”

최근 법무부는 검찰의 공소장도 대부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필사의 탈출을 한 난민들에게 인형을 나눠주는 장관.
비 오는 날에도 부하 직원의 희생으로 우천 브리핑하는 차관.

법무부의 ‘알리고 싶은 것’을 ‘알리려는’강한 소통 의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알리고 싶지 않은 것’도 ‘알려줘야’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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