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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판사 임용 경력 10년→5년" 대법원 '숙원' 법안…부결 이유는?

등록 2021.09.01 14:32

[취재후 Talk] '판사 임용 경력 10년→5년' 대법원 '숙원' 법안…부결 이유는?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원조직법 일부 개정법률안 부결 / 연합뉴스

▲21대 국회 본회의 첫 부결 법안이 된 법원조직법 개정안
재석 229인 중 찬성 111인, 반대 72인, 기권 46인으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땅! 땅! 땅!

어제(8월 31일)21대 국회 본회의에서 첫 법안 부결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인데 먼저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판사는 10년 이상 변호사 등의 직에 있던 사람 중에서 임용하도록 함" (제42조 제2항, 현재 법률)
"판사는 5년 이상 변호사 등의 직에 있던 사람 중에서 임용하도록 함" (제42조 제2항, 개정안)


결국 판사를 뽑을 때 요구하는 법조 경력을 줄이겠다는 겁니다.

본희의에 제출된 개정 이유는 이렇습니다.

"최소 법조경력 기간을 도입한 이후 판사 임용이 크게 부진하였고, 2022년부터는 법관 충원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어 법원의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등의 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판사 임용에 소요되는 최소 법조경력 기간을 현행보다 짧게 조정하고자 함."

쉽게 말해 판사를 뽑을 때 너무 많은 경력을 요구해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으니, 재판 공백을 막기 위해서 요구 경력을 조금 줄이자는 것입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이 최초 발의했습니다. 법사위에서도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던 법안입니다. 그런데 어제 본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21대 국회 본회의 1호 ‘부결 법안’의 멍에를 지게 됐습니다.

 

[취재후 Talk] '판사 임용 경력 10년→5년' 대법원 '숙원' 법안…부결 이유는?
대법원 외경 / 연합뉴스


▲대법원 '숙원' 법안 부결 뒤 한 줄 입장문…"국회 결정 존중"
대법원은 어제 법안이 부결된 뒤 짤막한 입장문을 냈습니다.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현행법에 따라 법조일원화를 추진하겠다"

사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대법원의 ‘숙원’ 법안입니다. 현행법대로라면 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로클록(재판 연구원)으로 3년간 근무합니다. 이후 7년 변호사 등 다른 경력을 쌓아서 법조 경력 10년을 채운 뒤에야 판사가 임용될 수 있습니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법조계 인사들은 “법조 경력 10년을 채운 사람 중에서 앞으로 우수 인재는 법원으로 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로펌에서 경력을 7년 정도 쌓은 사람 중에서 우수인재는 이미 로펌에서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그런데 40대나 넘은 우수 중견 법조인이 갑자기 고액 연봉을 버리고 박봉인 판사, 그것도 법원의 막내급인 배석 판사로 옮기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결국 우수하지 못한 경력자들만 지원해 법원 역량이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다른 관계자는 “법조 경력을 5년 정도로 줄이면 로클록 3년을 마친 사람이 2년 정도 국선 변호인 등을 맡으며 사회 경험을 쌓은 뒤 30대 중반에 판사가 돼서 전문성을 쌓기 좋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현재 로스쿨 졸업생 중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바로 임용될 수 있는 검사나 대형 로펌에 지원하고 있다”면서 “만약 판사 임용에만 10년 경력을 계속 요구하다 보면 법원 역량이 낮아져 사법통제가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한 변호사는 “후관 예우가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대형 로펌들이 로클록 3년을 마친 법조인 중 법관이 선발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고액 연봉으로 채용한 뒤, 2년 동안 극진 대우를 하고 다시 경력 법관으로 돌려보내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대형 로펌들이 소위 ‘판사 장학생’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법고시 1등부터 100등까지 줄 세우기로 판사를 만드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도입된 법률을,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고 무력화 시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어제 법안에 반대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도 “이미 내년도 신규 임용 판사 157명 중에 상위 7개 로펌 출신이 무려 50명, 전국 신규 판사의 8분의 1이 김앤장 출신입니다. 하나의 로펌에서 판사 8분의 1을 충당하는 나라 이런 나라가 전 세계에 또 있겠습니까?”라며 후관 예우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우리나라 우수 판사의 상은 필기시험만 잘 보고 손 빠르고 대법원장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바꿔 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고 현행 10년 법조경력 요구 조항은 이것이 담긴 것이다. 앞으로 판사는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라며 개정안에 반대 표를 던졌습니다.

 

[취재후 Talk] '판사 임용 경력 10년→5년' 대법원 '숙원' 법안…부결 이유는?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왼쪽)과 홍정민 의원 / 연합뉴스

▲민주당 내부 찬반 토론 끝에 결국 부결…“김경수 판결 탓?”
어제 법안 통과 전에 촌극도 벌어졌습니다. 같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끼리 찬반 토론을 벌인 겁니다.

법안을 처음 발의한 홍정민 의원의 발언 중 일부입니다.

"의원 여러분! 법원조직법을 개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양질의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 그리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법조일원화에 맞춘 판사를 확보하고 법관 수급을 원활히 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서는 해외 선진국에서도 고민 중인 사안입니다. 일본은 법조 경력 제한이 없고 미국과 영국은 5년 이상, 독일도 3년에서 5년 이상이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5년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특별히 불합리하다고 판단할 이유는 없습니다. 로스쿨 3년과 법조경력 10년을 요구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40대 초반은 되어야 법관에 임용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30대 법관은 찾아볼 수 없게 되겠습니다. 법원 판사들의 세대 다양성이 또 문제가 됩니다."

법안을 반대한 이탄희 의원 발언 중 눈에 띈 부분도 있었습니다.

"의원 여러분! 오늘의 이 개정안은 법원을 점점 더 기득권에 편향되게 만들 것입니다. 지난 6월 강제징용 각하 판결처럼 탁상 판결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개정안의 최대 피해자는 재판을 받는 국민입니다. 오늘이 법안을 부결시켜 주시고 차분하게 공론화 절차를 거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탄희 의원은 특정 판결을 거론하며 개정안에 반대했습니다. 지난 6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34부(부장판사 김양호)에서 내린 판결입니다. 당시 재판부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하를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거나 포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비엔나 협약 제27조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며 각하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 이후 여당에서는 비판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 판사 아니다”라고 비판했고, 이탄희 의원도 “과거에 사로잡힌 판결 하나가 세상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결국 이탄희 의원은 대법원 ‘숙원’ 법안 처리를 앞두고, 여당 의도에 어긋난 판결을 거론하며 사법부에 무언의 압박을 한 겁니다.

법조계에서는 어제 부결 사태를 “민주당이 말 안 듣는 판결을 이어가는 법원에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 7월 21일 대법원이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유죄를 확정합니다. 하루 뒤인 7월 22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대법원의 ‘숙원’ 법안인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상정되지도 못합니다. 한 달 뒤인 지난 24일 여야 합의로 법사위 전체회의를 간신히 통과했지만 어제 다시 부결됐습니다. 한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받고, 동생인 조권 씨는 1심보다 3배인 징역 3년을 받고 법정 구속된 상황에서 민주당이 대법원에 무언가 보여주려 한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부결 사태가 향후 법조계에 어떤 효과를 낳을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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