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생각 좀 합시다

등록 2021.09.07 21:50

수정 2021.09.07 21:53

1977년 경찰이 고깃집 간판 단속과 철거에 나섰습니다. '암소갈비' '송아지고기' 같은 간판이 육류 소비를 부추기고 한우 증산을 막는다는 이유였지요. 1960년대에는 서울시가 매주 수요일을 '무육일'로 정해 모든 육류를 먹지도 사고 팔지도 말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고기 소비가 7분의 1로 줄 거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야말로 주먹구구 탁상행정이었지요.

2002년엔 기상천외한 설 연휴 교통대책이 나왔습니다. 차량번호 끝자리 숫자에 따라 고속도로 진입 시간대를 나누겠다는 겁니다. 끝자리가 영 번이면 자정과 정오부터 한 시간씩만 들여보내는 식이어서 비웃음만 사고 말았지요.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지난 5월 서울교육청은 급식 바우처로 살 수 있는 편의점 식품을 열 가지로 한정하고 자상하게 이런 지침까지 내렸습니다. 우유는 되지만 생수는 안 되고, 떠먹는 요거트는 되지만 마시는 요거트는 안 됐습니다. 나트륨 천67밀리그램 이하 도시락은 편의점에 거의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거리 두기 지침이 수시로 두서없이 바뀌는 바람에,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분이 많습니다. 수도권 추석 성묘만 해도 네 명까지만 갈 수 있지만 집에서는 여덟 명까지 모일 수 있답니다. 툭 트인 야외 성묘를 실내보다 더 엄격히 조이는 이유가 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아서 궁금증만 더할 뿐입니다.

식당-카페 마감시간과 점심-저녁 모임 숫자도 들쭉날쭉 오락가락하지만 정부는 확진자 접촉에 관한 시간대별 데이터는 없다고 했습니다. 과학적 통계 근거가 없다고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헬스장 샤워는 안 되고 대중목욕탕에선 괜찮다지요. 이건 또 왜 그런건지… 헬스장 음악과 러닝머신 속도 제한은 이미 세계적인 '믿거나 말거나' 뉴스가 됐습니다. 탁구장에선 두 시간만 있어야 하고 단식은 돼도 복식은 안 됩니다. 출퇴근 만원 지하철은 모른 체 하면서, 택시 승객을 규제하는 건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엿장수들은 엿을 얼마나 길게 늘이고 자르든 엿장수 마음대로였습니다. 하지만 방역 지침은 국민의 일상에 직결되고, 누군가에겐 생계가 달린 절박한 문제입니다.

이른바 K방역의 성과는, 정부 하자는 대로 따라주며 절제와 희생을 감수하는 국민의 몫이 누구보다 큽니다. 그렇다고 상식적 이유와 합리적 근거도 없이, 내키는 대로 시시콜콜 족쇄를 채워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9월 7일 앵커의 시선은 '생각 좀 합시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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