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전체

[취재후 Talk] '朴 피해자' 관련 경찰 송치의견서 120쪽…공개는 언제쯤?

등록 2021.09.08 13:35

수정 2021.09.10 13:03

여권의 여전한 '선택적 인권 호소'

◆ 박 전 시장 유족, 與 4.7 보궐선거 패배 보름 뒤 행정소송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은 지난 4월22일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박 전 시장이 성희롱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직권 조사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지 정확히 보름 뒤입니다.

소송은 당초 7일부터 본격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유족 측에서 재판 연기를 요청했고,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가 이를 받아들여 첫 기일을 다음달 12일로 변경했습니다.

정철승 변호사는 이 소송 관련 유족 측 대리인인데, 소장 준비 및 작성 시간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선거 전이나 직후부터 소송을 준비했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이런 상황 등과 관련,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소제기는 법치국가에서 시민에게 인정된 권리"라며 "법적 절차를 회피하고 죽음으로 피해자의 법적권리주장을 봉쇄한 자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있을지언정, 소송을 통해 판단을 받아 보겠다는 사람을 비난해선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박 전 시장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어) 피해의 최소한만 인정된 아쉬운 결정이었다"며 "행정소송을 통해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더 심각하고 중한 것이었음이 인정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 헌법 제10조 1항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 법원, '朴 피해자' 명예훼손성 글 정철승 SNS에서 삭제해야

정철승 변호사가 피해자에 대해 언급한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삭제하라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도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고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습니다.

김 변호사는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게시글 삭제 일부 인용 결정이 내려졌다"며 이 같은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재판부는 "높은 수준으로 보호돼야 할 (피해자)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항이 언제든지 공개될 수 있는 결과에 이르렀다"며 "채권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 사회적 가치 평가를 저해하거나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정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피해자 관련 글을 잇달아 올렸는데, 특히 지난달 10일엔 피해자가 사용 중인 가명까지 공개했습니다.

피해자 측은 관련 게시물 삭제와 함께, 정 변호사가 피해자의 신상이 특정될 수 있고 성폭력 피해를 언급하는 글은 SNS에 게재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정 변호사의 게시글이 피해자의 별건 성범죄 사건에 대한 구체적 경위가 기재되어 있는 바 삭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다만, 정 변호사 추가 작성한 피해자 관련 두 개의 게시글 삭제 및 가처분 신청 불이행시 1000만원을 지급받게 해달라는 요청은 기각했습니다.

정 변호사는 이와 관련, "법원은 김 변호사의 신청을 대부분 기각했다"며 "사실상 패소한 가처분 신청, 사실상 강제력이 없는 가처분 결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헌법 제17조 :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 헌법 제34조 1항 :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취재후 Talk] '朴 피해자' 관련 경찰 송치의견서 120쪽…공개는 언제쯤?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에서 지난 3월17일 주최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모습.


◆ 검찰 수사, 행정소송, 정기국회에서 '경찰 송치 의견서' 공개될까?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 관련 사건 발생 직후 경찰 46명을 투입하고 전담 TF를 꾸려 170여 일 동안 수사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곤 종합 결과를 지난해 12월29일 발표했습니다.

당시 경찰이 제공한 보도자료는 2쪽 분량이었는데, "피고소인 사망에 따라 불기소(공소권 없음), 비서실장 등에 대한 추행방조 고발사건은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해 불기소(혐의 없음)"라고 적시됐을 뿐 박 전 시장의 구체적 행위와 관련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관련 취재를 종합한 결과, 경찰이 당시 검찰에 제출한 송치 의견서는 도합 120쪽 분량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추행 사건 관련해선 30쪽, 추행방조 관련은 대략 90쪽이었습니다.

의견서에는 추행 관련 피해자 진술과 추행방조 관련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하는 참고인 진술을 비롯, 관련 증거자료 등이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는 점도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에 피해자 측은 지난 1월8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경찰의 송치 의견서를 공개해달라고 서울중앙지검에 정보공개 청구했는데,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의견서를 공개할 경우 관련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고,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며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의견서가 공개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불필요한 분쟁이 일고 있다고 보는 게 오히려 타당하다는 판단입니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서 수사 결과로 인정된 사실관계, 즉 송치의견서에 담겨 있는 사실관계를 상세히 발표했다면 최근까지 지속되는 N차 가해를 상당부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족 측에선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라고 피해자 측에 요구하고 있고, 일부에선 "피해를 겪지 않았는데 허위 주장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하기에 '증거 공개'가 더욱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력 대선주자에서 하루 아침에 위선자로 전락한 앤드류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의 성추행 사건은 뉴욕주 검찰이 160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발표해 불필요한 논쟁을 막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습니다. 참고로 쿠오모는 여전히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아직 박 전 시장 관련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 계류 중입니다. 우리 검찰의 용단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행정소송 과정에서라도 재판부 직권으로 송치 의견서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 헌법 제30조 :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 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덧붙임) 이번 정기국회를 앞두고 야당에서도 검찰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 상태로, 검찰의 답신 내용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입니다.

※ 헌법 제61조 1항 :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서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 與, 아프간 여성 인권 호소-잇따라 희생된 여군 부사관 추모…朴 피해자는?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인 김상희 의원을 비롯해 여야 여성의원 48명은 지난달 24일 텔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관련, 여성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아프간 여성들의 생명과 인권 보장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와 우리 국민이 국가 위상에 걸맞는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김 부의장이 국회 소통관에서 대표로 마이크를 잡았는데, 전날 긴급 간담회를 열어 여성 의원들이 아프간 여성 인권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데 뜻을 모았다고 자신의 SNS를 통해 밝히기도 했습니다.

모처럼 여야 여성의원들이 아프간 여성 인권을 위해 손을 잡고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박수 받을 일이었습니다.

지난달 11일 해군 여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5월 말 공군 여 부사관이 상관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뒤 2차 가해로 고통을 호소하다 세상을 떠난 이후, 당국이 재발 방지 대책을 쏟아내던 상황에서 해군에서 유사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한 겁니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선 서욱 국방부장관 책임론까지 거론되는 등 강한 어조로 군 당국을 질타했고, 대선 주자들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 대선 캠프의 권지웅 대변인은 "군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책무는 구성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며 "사건을 은폐하고 회유하려는 직간접적 시도가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 발생 3개월도 안 돼 비슷한 사건이 반복됐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도 "군 전반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미진한 수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미온적 처벌로 이어지는 구조의 문제가 또 드러난 것이다. 제대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고 당연히 해야할 말씀인데, 이 잣대를 박 전 시장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적용해주신다면 발언의 진정성이 배가될 것 같습니다.

※ 헌법 제7조 1항 :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취재후 Talk] '朴 피해자' 관련 경찰 송치의견서 120쪽…공개는 언제쯤?
지난달 24일 '아프간 여성 인권 보장을 위한 대한민국 여성의원 기자회견'에서 대표 발언하는 김상희 국회부의장.


◆ 문 대통령, '朴 피해자' 위로 충분했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6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습니다. 이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해군 부사관이 사망에 이른 사건에 대해서도 "유가족들에게 어떻게 위로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국방부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박 전 시장 성폭력 피해자에게 전한 문 대통령의 위로는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박 전 시장 사망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강민석 전 대변인이 최근 발간한 자서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와 박 전 시장은) 오랜 세월 비슷한 활동을 쭉 해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픕니다. 정말로 인생무상, 허망하고. 안 좋은 일로 돌아가셨으니 더욱 그렇고요. (피해자에게) 목숨으로 책임진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조문은) 전혀 고민되는 대목이 아닙니다. 비판해도 조문할 겁니다."

초고엔 "조문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라는 문장으로 담겼는데, 발간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조문 말고는"이라는 내용이 빠졌습니다.

책이 나오고 피해자가 이 글을 접하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들지 벌써부터 염려가 됩니다. 차라리 당시 그런 발언이 있었다는 걸 모르는 게 낫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모두가 '피해자'고, 똑같은 국민이고, 위로 받고 싶은 마음도 매한가지일 텐데 전해지는 공기의 '온도차'는 다소간 있어 보입니다.

※ 헌법 제69조 :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 "피해자 일상 회복 돕겠다", "2차 가해 발생 않도록 하겠다"던 與의 침묵

민주당 이낙연 대선 예비후보는 당 대표 시절이자 인권위 발표 다음 날인 2021년 1월27일 최고위에서 "인권위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피해자가 2차 피해 없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박영선 후보도 지난 3월8일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송영길 대표도 취임 한 달을 맞아 지난 6월2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진행한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에서 "다시 한번 오거돈 박원순 전 시장의 잘못된 행동에 관해 공식적으로 피해자와 가족, 국민께 사과한다"고 재차 밝혔습니다.

송 대표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기본적 조치조차 취하지 않은 무책임함으로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너무나도 깊은 상처와 실망을 남겼다. 두고두고 속죄해도 부족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피해자 측 의견을 청취하겠다. 앞으로 민주당에서 취해야 할 책임 있는 조치에 대해서도 의논하겠다.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측에 따르면, 사건 발생 이후 페이스북 사과나 기자회견을 통한 사과 이외에 여권의 그 누구에게도 전화 등 직접적인 사과는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난 3월 당시 민주당에 요구했던 내용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진 게 없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3/21/2021032190011.html )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돕겠다,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인데요. 헌법 정신에 따라 국민, 국가의 이익 보다 정당이나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 헌법 제46조 2항 :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취재후 Talk] '朴 피해자' 관련 경찰 송치의견서 120쪽…공개는 언제쯤?
지난 6월2일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당 대표실에서 박 전 시장 피해자 관련해 사과하는 모습.


◆ 권인숙이라는 상징성이 주는 아쉬움

서슬 퍼런 공권력 하에서 공포심을 이겨내고 진실을 밝히는 폭로, 그런 용기가 성스럽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세상에 드러낸 민주당 권인숙 의원의 폭로가 그랬습니다.

권 의원은 서울대 의류학과를 다니다 제적된 뒤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한 죄로 부천경찰서(현 부천소사경찰서)에 붙잡혔는데, 당시 그를 고문했던 경찰관은 그에게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권 의원은 아픈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게 싫었기에 당시의 기억을 감추려고도 했지만, 이내 폭로를 선택했습니다. 변호인단이 낸 고발장에 당시 그의 심경이 담겨 있습니다.

"최고학부까지 다닌 미혼의 피해 당사자가 몇 차례 자살 충동을 간신히 극복하고 여성으로서의 앞길을 희생해서라도 그 같은 끔찍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월간 '말' 1986년 7월호)

5공화국의 권력기관에선 성고문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습니다. "폭언, 폭행만 있었고 성적 모욕은 없었다"고 발표한 검찰에 대한 투쟁, 고문 경찰관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내기까지 권 의원은 2년 넘게 인생을 건 전쟁을 했습니다. 폭로 보다 폭로 이후가 더 험난했던 겁니다.

권 의원은 지난 1월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논평을 냈을 당시,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하다. 다른 당을 비난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문일침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7월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피해자 분에 대한 호칭을 논의하는 과정에선 "피해호소인이 좀 거슬리는데요. 간사 회의에서도 피해자로 하자라고 했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갑자기 힘이 빠지고 젠더특위가 너무 강조되고 교육 강조된 것 정도는 너무 약하고요. 여성 의원들이 당에 요구하는 게 있어야 할 것 같고요. 뭔가 긴급한 대응적 요소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박 전 시장 피해자 관련해 '권인숙'이 아닌 다른 여성 의원이었다면, 힘을 실어준 것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폭로 이후 피해자가 받는 고통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권 의원의 발언으론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피해호소인'은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민주당 여성 의원 카톡방에서 더 단호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면 '권인숙 답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박 전 시장 사건 관련해선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권인숙 보유당'이고, 최근에 더더욱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이재명 대선 캠프 역시 '권인숙 여성미래본부장'을 보유 중입니다.

이제 막 업무 일선에 복귀한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끊이질 않는 2차 가해의 쓰나미를 막아줄 권위도 힘도 갖고 있는 셈이죠.

※ 헌법 제32조 4항 :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 여성 지지율 '지속적 하락' 국민의힘, 피해자 일상 회복에 어떤 영향?

YTN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한 9월 첫째 주 주간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 여성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이 37.5%, 국민의힘이 28.6%였습니다.

4.7 보궐선거 운동이 한창이었던 3월 넷째 주 리얼미터 조사에선 국민의힘이 38.2%, 민주당이 29.4%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선거가 코앞이던 4월 첫째 주까지도 국민의힘은 37.2%로 31.1%의 민주당에 6.1%P 앞섰습니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여성들이 점차 국민의힘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국민의힘 일부 대선 후보들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 대변인은 올림픽 사상 첫 양궁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에서 시작된 '왜곡된 여성 혐오' 기류에 일부 동조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보선 직후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박 전 시장 성폭행 피해자에게 사과했습니다. 박 전 시장의 '어떤 행위'에 대한 사과인지까지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한다는 용기 있는 발언도 했고 회견장에 섰다는 사실 만으로도 평가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2차 가해와 관련해선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어 아쉬움이 듭니다. 선거 이후 국민의힘의 여성 지지율 하락과 민주당의 '묵인'을 한 데 묶어 바라보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국민의힘이 계속 여성들에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민주당이 지지율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몸을 낮췄을 것이란 생각은 듭니다.

헌법만 잘 지켜도 여성 지지율은 자연스레 올라갈 텐데, 최근 거대 양상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지울 길이 없네요.

※ 헌법 제34조 3항 :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 긴 글을 마치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헌법 제1조 2항). 위정자들은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잠시 위임받아 그들을 대리해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또 정당 역시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합니다(헌법 제8조 2항). 지지 정당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하고, 부득불 갈등이 발생하면 정치권이 나서 그 갈등을 해결 혹은 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도리어 정치권이 갈등을 부추기는 것 같은 모습들이 종종 보여지는 게 차제의 현실입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 여겨지면 험한 말, 욕설 문자 폭탄이 가해지는 등 어느새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기대하기도 힘든 세상이 된 듯합니다. 그야말로 가벼움의 시대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가치마저 퇴색될까 두렵습니다.

제 스스로도 과연 제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를 반문해봤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자격이 되시는 분들이 '격에 맞는' 말씀을 해주시면, 저 같은 사람이 감히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될테니까요.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