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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박지원-조성은 만남, 어떻게 확인했나

등록 2021.09.16 07:01

수정 2021.09.16 08:08

[취재후 Talk] 박지원-조성은 만남, 어떻게 확인했나

'제보자' 조성은 씨가 지난달 11일 SNS에 공개한 사진. "늘 특별한 시간, 역사와 대화하는 순간들 Lv38, Lotte"이란 설명이 달렸다. / 조성은씨 페이스북

발단은 (늘 그러하듯) 또 SNS였다.

지난 7일, '제보자' 후보군에 포함된 조성은씨(前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가 윤석열 예비후보를 줄곧 비난해왔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그의 SNS를 살펴보고 있었다.

사건의 핵심 당사자면서도 뭐 하나 제대로 기억해낸 것이 없던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제보자가 밝혀지는 순간 어떤 세력인지 알게 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검찰'이 야당에 고발을 사주했는지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선 제보자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날 오전 조씨와 30분 이상 통화를 했지만, 본인이 김웅 의원에게 자료를 받았거나 '고발 사주 의혹' 제보를 했는지 여부에 대한 확답 없이 상황에 대한 설명만 길어진 터였다. 그외 제보자로 거론된 당내 인사들이 '나는 아니다'라며 분명히 선을 그은 것과는 결이 다른 반응이었다.

조씨의 SNS엔 하루에만 대여섯 개의 메시지가 올라올 정도로 글이 많았다. 이런저런 시사 평론이나 개인적인 내용도 꽤 있었지만 상당수 글이 윤석열·최재형 후보 비판에 집중됐고, 홍준표 후보나 김동연 전 부총리에 대해선 비교적 후한 평가가 이어졌다.

한참 스크롤을 내리던 중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이는 도심 전경에 '늘 특별한 시간, 역사와 대화하는 순간들'이란 설명이 달렸다. 좌우 대칭 구도까지 신경쓴 사진 한가운데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을 위해 준비된 듯한 자리가 보였다.

'어디서 누구와 만난 자리이길래'란 궁금증이 생겼는데, 이미 장소에 대한 설명은 적혀있었다. 'Lv38, Lotte', 롯데호텔 38층이란 뜻이다.

■롯데호텔과 국정원 安家

'롯데호텔 꼭대기층' 하면 국정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안기부 때부터 '안가(安家)'로 일부 객실을 썼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 중 하나다.

특히 10년 전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국정원 직원이 침입하다 적발된 사건 이후 '롯데호텔 안가'는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대중적인 유명세까지 탄 곳이다.

'숙소 침입 사건'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인사로부터 수 년 전 '안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다 몇 년 전 국정원 내부 인사가 '안가'를 남용한다는 제보를 받은 것도 되새기게 됐다. (해당 제보는 최종 확인된 사안은 아니었다)

때마침 과거 국민의당 출신 인사 등으로부터 조씨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씨가 정계 입문 이후 가장 따르던 사람이 다름아닌 박지원 국정원장이란 전언이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두 사람의 만남을 단정하기엔 여전히 무리였다.

 

[취재후 Talk] 박지원-조성은 만남, 어떻게 확인했나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자리한 '롯데호텔 서울'. 오래 전부터 이른바 '국정원 안가'로 불리는 객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롯데호텔 홈페이지


■'억지 연결과 추정'

우선 팀내 몇몇 기자들과 가볍게 얘기를 나눠봤다. '롯데호텔'이란 장소와 '국정원 안가', 그리고 '역사와 대화하는 순간들'이란 세 가지를 연결해보면 '박지원'이란 이름이 떠오른다는 유추 과정을 제시했다.

당연히 반응은 시원찮았다. '너무 억지 연결 아니냐'는 이유였다.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던 중 조씨와 두번째 통화가 이뤄졌다. 그는 자신이 "공익신고자가 아니다"라고 정면 부인했다. 휴대전화를 유관기관에 제출했다는 신고자와 달리 자신은 계속 사용해오던 전화기로 지금도 통화를 하는 만큼, 말이 안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씨는 이러한 당시 증언에 대해 이후 한 방송에 출연해 '본의 아니게 사실과 아닌 부분을 말씀하게 된 점'에 대해 사과했다)

일단 조씨 본인의 강한 부인에 '사진의 만남'도 더 이상 알아볼 이유나 여유가 없었다. 이런 수준의 정황으로 조씨나 박 원장에게 직접 질문하는 것도 실례란 생각이 들었다. 롯데호텔 사진과 박 원장에 대한 '추정'은 일단 그렇게 '홀드'된 상태로 넘어갔다.

다음날인 8일, 뉴스버스가 취재 과정에 대한 기사를 올린 뒤, 제보자가 조씨란 확신을 다시 갖게 됐다. △해당 기자와 가끔 식사를 하는 관계 △6월말 이뤄진 첫 제보 등 제보자에 대한 배경 설명이 전날 조씨와 전화통화를 하며 들은 정황과 상당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TV조선은 실제 고발이 이뤄진 고발장의 출처가 미래통합당 당무감사실과 정점식 의원 측이란 점을 파악해 이를 확인하는 데 취재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후엔 윤석열 후보의 기자회견 일정까지 잡히면서 대다수 언론의 관심이 국회 회견장으로 쏠렸다. '공익신고자'란 장치가 내걸린 제보자에 대한 취재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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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뉴스버스에 제보한 조성은씨. / 조선일보DB


■우연히 발견한 '역사적' 표현

9일 오전, 조성은씨가 직접 입장문을 띄웠다. 윤 후보 측을 겨냥해 "저를 공익신고자라고 몰아가며 각종 모욕과 허위사실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어떤 정당활동 내지는 대선캠프에 활동하지 않음에도 불구, 당내 기자들에게 이재명 캠프 등 '국민의힘이 아닌 황당한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다는 허위사실도 유포했다"는 내용이었다.

본인이 공익신고자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한 성명에 혼란은 가중됐다. '조성은'이란 이름 석자가 내걸린 수많은 보도가 쏟아졌지만 그를 제보자로 확정할 근거는 없었다. 일각에선 김웅 의원으로부터 파일을 전달 받았다는 당내 인사와 이를 뉴스버스에 알려준 제보자, 그리고 공익신고자가 동일인물인지도 불확실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10일 오전 조씨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다 '나무위키'란 사이트가 발견됐다. 그의 당적과 이력에 대해 비교적 잘 정리가 돼있어 관련 내용들과 출처를 대조하던 중, 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또 "박지원 대표님 역시 이번의 순간으로 어느 당 소속 국회의원 1인이 아닌 정당을 초월하는 역사의 상징이 되셨다"며 "누군가 늘 묻는다. '왜 박지원 대표 곁에 따라다니는 거냐'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역사를 가까이서 바라보고 경험하기에는 박 대표 곁이 VIP석이니 그렇지 바보야'라고 하겠다"고도 썼다.>

문장의 출처는 2020년 4월에 보도된 한 기사였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조씨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을 즈음해 박 원장에 대해 '역사의 상징'이나 '역사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VIP석'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조씨의 SNS를 확인하니 당시 비슷한 표현을 여러 차례 한 것도 확인됐다.

사흘 전 '막연한 추정'으로 덮었던 롯데호텔 사진을 다시 꺼내들었다. 박 원장을 잘 아는 인사에게 보여주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자신도 가본 곳이고, 박 원장의 단골로 알고 있으며, 이른바 '안가'와 같은 객실이 아닌 전망좋은 고급 일식집이란 설명이었다.

사진이 올라온 날짜를 다시 확인해봤다. 8월 11일은 제보자가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를 뉴스버스에 전달했다는 7월 21일과 첫 보도가 나온 9월 2일 사이 딱 중간인 날짜였다.

 

[취재후 Talk] 박지원-조성은 만남, 어떻게 확인했나
2018년 1월 한 회의에 참석한 박지원 국정원장(당시 의원)과 조성은씨. / TV조선 보도 캡처


■박지원의 '즉답'

대충 넘길 사안이 아니란 점을 직감했다. 곧바로 조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미 본인 설명대로 수백통의 전화가 몰리던 시기였다. 네 차례 시도에도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8월초 박 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만남을 확인할 사람은 박 원장밖에 없었다. 전화를 건지 10여분 만에 회신이 왔다. 서론도 없이 곧바로 '조씨와의 8월초 롯데호텔 만남'에 대해 질문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하고 자주 만나요. 그 후로도 만나고. 자주 전화하고, 아주 똑똑한 친구로 생각하고, 그 친구도 정치인으로 저를 제일 좋아한다고 그래요."

만남 사실을 인정한 박 원장은 '고발 사주 의혹 제보'와의 관련성에 대해선 "전혀 얘기한 적 없다"거나 "섞이기 싫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야권의 유력대선 주자와 연관된 의혹을 제보한 인사와 대한민국 정보당국 수장이 제보가 이뤄지던 시기에 만났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다. 이를 보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른바 '메신저 공격'과는 무관한 '국민 알 권리' 차원의 검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공익신고자'란 신분으로 전환됐다는 보도가 나온 만큼, 실명이나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인적사항을 그대로 공개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공익신고자에 대한 법적 근거와 관련 조항들을 자세히 점검하던 중,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조씨가 직접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제보자임을 밝힐 것이란 내용이었다. 본인 스스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셈이니 굳이 익명을 쓸 이유도 사라지게 됐다.

 

[취재후 Talk] 박지원-조성은 만남, 어떻게 확인했나
 


■'보도의 의도'

10일 저녁, <조성은, 제보 후 박지원 만나…朴 "이번 건과 무관">이란 기사가 보도됐다. 확인되지 않는 추정은 최대한 자제하고, 만남에 대한 사실과 합리적인 해석에 박 원장의 반론을 충분히 담은 내용이었다. 파장은 상당히 컸지만 당시 뉴스를 다시 보면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 정도로 평이했다.

며칠 후 통화가 이뤄진 조씨는 "김정우 기자의 의도된 보도라고 본다"며 "마타도어를 앞장서서 한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그가 그런 주장을 하는 의도를 알기 어려웠다. TV조선에 출연해 직접 입장을 밝힐 생각은 없는지 물었지만 거부했다.

보도가 이뤄지기까지 나흘 간의 취재 과정을 거의 빠짐 없이 적었다. '고발 사주 의혹'의 진실이 무엇인지 쫓는 과정에 발견한 작은 단서였고, 이를 확인한 결정적 계기도 조씨 본인의 과거 SNS였다. 보도 과정에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이 보도로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나 결론이 바뀔 순 없다. 이미 조씨를 통해 제보된 내용은 수사당국을 거쳐 언젠가 진상이 규명될 테다. 그 과정도 결국 모두 보도가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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