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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의붓효자, 100원 택시

등록 2021.09.21 21:49

수정 2021.09.21 21:57

"우리 막둥이부터 먼저 줄란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어릴 적 국화빵 팔러 가는 어머니를 따라 장터로 나서곤 했습니다. 어머니 혼자 멀리 가신 날은, 저물도록 동네 어귀에 앉아 어서 돌아오시길 기도했지요. 

"우리 어머니한테, 막내아들이 기다리니까 얼른 집에 가라고 말 좀 해주세요."

추기경이 선종하기 전 가장 그리워한 풍경도 "장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저녁 노을" 이었습니다.

시인 박재삼의 어머니는 생선장사로 오누이를 키웠습니다. 신새벽 삼천포에서 생선을 이고 진주 장터로 나갔다가, 달빛 아래 돌아오곤 했지요.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 마음은 어떠했을꼬…"

세상이 천지개벽했다지만 지금도, 연로한 시골 부모님들이 장터 한번 오가기란 예삿일이 아닙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고립되면서 버스편이 아예 끊기거나 뜸해진 겁니다. 외진 집에서 정류장까지 걸어 나오는 데만 삼사십 분씩 걸리기 일쑤지요. 어쩔 수 없이 외출도 뜸해지다 보면, 더 쉬이 늙어가실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네들 태우고 다니니까 고맙죠)"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신이 내린 선물, 9센트 택시를 타는 한국 농촌.' 뉴욕타임스가 충남 서천군이 운영하는 '희망택시'를 상세히 전하며 붙인 제목입니다. 앞머리 '신의 선물'은 여든다섯 살 할머니 말씀에서 따왔습니다.

서천 어르신들은 택시를 불러 타고 면소재지로 나가 병원 진료를 받고, 시장도 영화도 보고, 파마와 목욕, 짜장면 외식도 합니다. 장날이면 텃밭 작물을 들고가 좌판을 벌이기도 하지요. 돌아올 때도 택시에서 내리면서 백원만 내면 됩니다. 나머지는 군이 내주는데, 버스를 지원하는 것보다 덜 든다고 합니다.

서천군이 8년 전 처음 조례를 만들어 정착시킨 공공형 택시는 전국으로 번져나가 지난해에만 2백70만명이 이용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요양원에 찾아가 백네 살 어머니를 단 10분 남짓 뵙고 눈물을 훔치는 칠순 아들입니다. 가뜩이나 코로나 탓에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발길이 떨어지겠습니까.

오늘 내일 고향집을 나서 돌아오는 자식들 마음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부모님 곁에 든든한 '택시 효자'가 있으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탁상공론 주먹구구가 아니라, 찾아가는 행정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9월 21일 앵커의 시선은 '의붓효자, 100원 택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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