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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가

등록 2021.09.23 21:50

수정 2021.09.24 16:08

소녀가장이 힘겹게 살아갑니다. 전기세가 밀려 단전을 예고하는 딱지가 붙고 전기가 끊깁니다. 소녀는 촛불을 켜고 자다 화마에 휩싸입니다. 영화는 2005년 숨진 여중생에게서 소재를 따왔습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단전 당한 집에서 촛불 화재로 목숨을 잃는 일이 한 해 두어 건씩 끊이지 않았지요. 전등도, 냉장고도, 전기장판도 꺼진 집은 이미 사람 사는 집일 수가 없습니다.

단전반원들은 전기를 끊으러 갔다가 노인이나 소년가장들이 바짓자락을 붙들고 애원하는 바람에 눈물을 훔치며 물러나오곤 했다고 합니다. 여중생 화재사고 이후 정부는 가정집 전기는 끊지 않고 최소한 전력을 공급해줍니다. 그래도 한동안 빠듯한 전기를 아끼려다 촛불 화재가 이어지면서 할머니와 손자가 숨지기까지 했습니다. 

전기료는 세금이 아닌데 왜 전기세라고 부르고, 사전에도 표준어로 올랐겠습니까. 전기는 안 쓸 수가 없습니다. 다달이 꼬박꼬박 세금처럼 물어야 합니다. 부부란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라는 시구처럼 말입니다. 전기세가 오르면 서민들이 겪는 일상적, 심리적 충격은 간단치가 않습니다.

정부와 한전이 8년 만에 전기료를 인상했습니다. 분기별로 올릴 수 있는 한도액을 꽉 채웠습니다. 오른 연료비와 쌓인 한전 적자를 더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겁니다. 올해 자회사까지 합친 한전의 순손실만 4조 원에 이를 거라고 합니다.

한전은 벌써 3년 전, 사장이 스스로를 두부공장 사장에 비유해 이렇게 푸념한 적이 있습니다. "두부가 콩보다 싸졌다" 두부는 전기, 콩은 석탄과 LNG라며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었지요. 그 한 해 전 5조원 가까이 영업이익을 냈던 한전이 적자로 돌아섰던 건 무엇보다, 싼 원전 가동을 줄이고 비싼 석탄과 LNG를 늘렸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3년이나 더 억지로 버틴 것은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전기료 인상은 탈원전의 근본을 흔드는 금기어였던 게 아닐까요.

대표적 공공요금인 전기료가 오르면 도시가스를 비롯한 다른 공공요금도 들썩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 상승률이 다섯 달 내리 2퍼센트대를 기록하며 인플레 걱정이 커가는 마당에 전기료가 비상을 걸었습니다.

여름이면 집집마다 "폭염보다 무서운 전기세"라는 비명이 터져나옵니다. 전기요금 고지서 나오는 날이면 커지곤 하는 부부의 목청이, 갈수록 더 날카로워질 일만 남았습니다.

9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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